동양사상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겸양을 매우 높은 가치로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주역(周易)』의 겸(謙)괘에도 겸양의 도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누누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산도 여러 글에서 겸(謙)이라는 글자가 지닌 의미가 깊고 의미심장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다산은 30대 중반 천주교 문제로 배척당하여 고관의 벼슬에서 쫓겨나 충청도의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이라는 낮은 벼슬로 좌천을 당했습니다. 그 무렵 다산은 내포(內浦)지역 일대의 많은 선비들과 교제하였습니다. 높은 학문을 지니고도 겸양의 마음이 지나쳐 세상과 담을 쌓고 숨어살던 선비 방산 이도명(方山 李道溟)과 주고받은 편지가 재미있습니다.
실학자였던 다산은 아무리 높은 학문과 인격을 지녔어도 숨어만 살면서 세상을 위해 공헌하지 않으면 학문과 인격은 실용성이 없기 때문에 권장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답방산이도명(答方山李道溟)」이라는 편지 글에 겸양의 문제에 대한 다산의 입장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대저 겸이라는 한 글자는 바로 만 가지 선(善)이 모이는 터전이기는 하지만 ‘사물의 이치를 열어 세상의 일을 성취하는[開物成務]’업을 발휘하고 선양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선비가 함양(涵養)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앞으로 처리할 일에 수용(需用)하기 위함입니다. … ‘나를 완성하고 타인을 완성케 하는[成己成物]’일에 쓰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겸양이 너무 지나치고 함축함이 너무 깊어 남을 이끌어주고 깨우쳐 주는 일에 전혀 점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인격만 수양하고 학문만 온축하여 혼자서 자신의 몸만 착하고 아름답게 닦는 겸양이야 좋기는 하지만 세상에 실용성이 없고서는 의미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다산다운 주장입니다. 공자(孔子)도 숨어살면서 뜻을 구함이야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더 좋으려면 의(義)를 행하여 그 도(道)를 달성하는 경지에 이르러야만 지고지선하다고 했습니다. 학문을 연구하고 도를 닦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지만, 세상을 구제하고 난세를 해결할 방도를 강구하여 현실에 수용되는 경지에 이르러야만 선비의 본무가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상아탑에 안주하면서 세상사에 오불관언을 표방하는 학자처럼 도만 닦고 인격만 수양한다고 썩어가는 세상을 잊고 지내서는 참다운 선비가 아니라는 다산의 뜻이 높기만 합니다.
수기(修己)를 통한 성기(成己), 치인(治人)을 통한 성물(成物),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을 때만 참다운 선비라는 공자와 다산의 뜻이 그래서 새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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