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파리는 왜 생기는가? / 강 명 관

문근영 2018. 10. 18. 00:19

제137호 (2009.5.6)


파리는 왜 생기는가?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다산의 글 중에 「조승문(弔蠅文)」이란 글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파리를 불쌍하게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인데, 다산은 뜻밖에도 ‘파리를 조문하는 글’을 지었던 것이다. 파리를 조문한다면 좀 우스꽝스러운 희문(戱文)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결코 아니다. 다산답게 엄정한 현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다산이 초당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1810년 여름이었다. 어쩐 연유인지 사람 사는 곳은 물론이고 산과 들까지 뒤덮는 엄청난 파리떼가 생겨나 술집이며 떡집 등 먹을 곳이 있는 곳이면 몰려드는데, 왱왱 거리는 소리가 흡사 우레 소리 같았다고 한다. 변괴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통을 놓고 약을 놓아 파리를 잡았다. 해충은 당연히 잡아야 할 것이니까.


파리를 죽이지 말라니!


한데 다산은 뜬금없이 파리가 불쌍하다며 죽이지 말라고 한다.


“아아, 이 파리들은 죽여서는 안 된다. 이 파리들은 굶주려 죽은 사람들의 후신이다. 아아, 그들은 오만 고생을 다하고 살아났다. 불쌍하게도 지난해 큰 기근은 겪고, 또 엄동의 매서운 추위를 겨우 견뎌내었다. 이로 인해 전염병이 돌았는데, 그런 판에 가렴주구가 이어지자, 백성들은 죽어 시신이 길에 널리고 언덕을 뒤덮었다. 수의도 입히지 않고 관에 넣지도 않은 시신들이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날이 더워지매 살갗과 살이 썩고 문드러져, 썩은 물이 흘러나와 고이고 엉기었다. 거기서 항하의 모래알보다 만 배나 많은 구더기가 옥실거리더니 이내 날개를 달고 파리가 되어 인가로 날아든 것이다. 아아, 사정이 이러하니 이 파리들이 우리 같은 사람의 부류가 아니겠는가. 너희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흘러내린다. 이에 밥을 담고 안주를 차려 놓고, 어서 오라고 청한다. 서로들 연락을 해 와서 함께 먹도록 하여라.”


백성들은 혹독한 굶주림과 매서운 한겨울의 추위를 겨우 견뎌 내었다. 봄바람이 불어 좀 살 만한가 싶더니 전염병이 돈다. 이런 판국에 관리들의 가렴주구는 끝이 없다.  남은 길은 하나, 죽음뿐이다. 굶주려 병에 걸려 죽은 자의 시신이 거리와 언덕을 뒤덮는다. 시신이 썩은 곳에서는 자연히 파리가 생긴다. 파리는 굶주려 죽은 인간의 화신이기에 다시 사람 사는 곳으로 찾아든다.


사정을 아는 다산은 흰 쌀밥에 간 맞춘 국, 술과 단술, 국수, 쇠고기, 생선회를 차려 놓았으니, 부모처자를 거느리고 어서 와서 먹으라고 파리를 부른다. 그저 원 없이 먹어보라, 물리도록 먹어보라! 다만 다산은 파리에게 살던 고을로, 관청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한다. 관청에는 음식이 흘러넘치지만, 결코 백성의 몫은 아니다. 되레 호소하러 간 백성들을 쥐어짜 가마솥을 빼앗고 소와 돼지를 끌고 갈 뿐이다. 그곳은 결코 찾아가 호소할 곳이 아니다. 굶주린 사람을 구제한다 해 보아야 벌레 먹은 쌀로 쑨 멀건 죽 한 그릇이 고작이고, 저희 벼슬아치끼리 아전끼리 요리상을 떡 벌어지게 차리고 고운 기생의 춤에 질펀한 풍악을 잡히며 놀 뿐이다.


부패한 관료들이 백성을 파리로 만든 것


1810년이면 정조가 죽고 난 뒤 불과 10년 뒤다. 개혁 군주로 알려져 있는 정조의 치세가 끝나자말자 세상이 이렇게 급변했던가. 결코 아니다. 『정조실록』과 『홍재전서』를  읽어보면, 왕은 백성을 살리고자 하는 좋은 정책을 수도 없이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해야 하는 양반관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조가 입에 달고 내뱉던 ‘기강이 없다’ ‘기강이 무너졌다’는 말은 왕과 조정의 정책이 막상 그것을 실행해야만 하는 양반관료들에게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한탄인 것이다.


정조는 나라가 돌아가는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관료들이 타락했고, 또 왕명을 우습게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살아 있을 적에는 벼슬아치들은 그 앞에서 듣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그가 죽고 나니 그 시늉조차 팽개치고 말았다. 이것이 사람이 파리가 된 이유다. 국가 권력을 쥐고, 세상을 다스리는 양반관료들이 한정 없이 부패했으니, 이들이 백성을 파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개혁의 대상은 위에 있는 거룩한 분들이었지 아래에 있는 미천한 백성이 아니었다. 어떤가?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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