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약자를 먼저 도와라 / 박석무

문근영 2018. 10. 1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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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먼저 도와라


다산 논리의 귀결점은 언제나 경(經)입니다. 모든 사례를 열거하면서 당위(當爲)적인 일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지만, 최종에는 경전(經傳)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 그렇게 해야만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예기(禮記)』에 “가장 훌륭한 일은 덕(德)에 힘쓰는 일이요[太上務德], 그 다음은 베풀고 보답하는 일에 힘쓰는 일이다[其次務施報]”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다산은 이복 아우 약횡(若鐄)에게 해준 도움말에서도 경에 근거를 둔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정약횡은 서출(庶出)이어서 당시 계급사회의 형편상 다른 일은 못하고 의원이 되어 환자를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는 달리 의료기술이 미비하던 시절이어서 이름난 의원에게는 고관대작으로부터 미천한 신분의 환자들에 이르기까지 집앞에 줄을 서면서 시술해주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경우 어떤 환자부터 먼저 시술해줄 것인가를 다산은 정말로 의미 깊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새벽종이 울리자마자 준마를 문 앞에 매면서 ‘영의정 대감의 명령입니다’, 큰 당나귀가 뒤따르면서 ‘병조판서의 명령입니다’, 또 준마가 뒤이으며 ‘훈련대장의 명령입니다’라고 말하는 사이에 초라한 선비 한 사람이 따라오며 ‘나는 탈것도 없이 왔으나 어머님 병환이 정말로 위독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슬프게 눈물을 흘린다. 네가 만약 세수라도 마쳤다면 맨 먼저 그 가난한 선비의 집부터 방문해야 한다. 그 환자에게 온갖 정성으로 진찰하고 시술하여 치료법을 가르쳐준 뒤에야 여러 귀한 집안을 찾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다.”(又爲舍弟若鐄贈言)

의원 아우에게 가르쳐주는 다산의 높은 뜻은 진리나 철학이 아닙니다. 매우 평범하고 가벼운 이야기이지만, 다산이라는 학자의 깊은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게 해주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고귀한 신분의 생명이나, 아무리 천한 신분의 생명이라도 생명의 귀중함은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준마를 타고 왔고, 큰 당나귀를 타고 온 귀족의 집안이야 생명연장의 다른 방도가 있을 수 있지만, 가난한 선비의 집안이야 의원이 직접 찾아가주지 않는 한, 달리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다산, 때문에 그런 약자부터 먼저 치료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부나 권력에 흔들림 없던 다산의 인도주의적 정신이 그런데서 빛나고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덕에 힘쓰는 일이 최상이라는 경의 뜻에 부합하는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말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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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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