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에 뜨는 해가 서쪽으로 넘어간다. 그 사이 살고 있는 우리 땅이 중심이라 옛 다산 남기신 말씀 그 속뜻을 알겠네.
우리 시대의 원로 문학평론가 구중서 선생이 주신 시조집 『불면의 좋은 시간』이란 책에 「다도해」라는 제목의 세 편 연작시조 중의 마지막 시조입니다. 전라도의 완도군에 흩어져 있는 다도해, 보길도 등의 섬들을 돌아보면서 지은 시조인 듯합니다. 대학에서 교수·학장을 지낸 학자·평론가로서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시조까지 창작할 수 있었는지 부럽기만 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다산의 말씀은 어떤 내용 이길래, 그 속뜻을 알겠다고 했을까요. 조선시대, 교통도 불편하고 통신시설도 불비하기 짝이 없던 시절, 벼슬아치로서 중국으로 가는 사신(使臣)의 일행에 발탁되는 일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국가의 경비로 나라를 대표해 외국에 사신으로 가는 일은 여러 가지로 자랑스럽기만 했습니다. 더구나 중화주의(中華主義)로 한껏 우러러보던 중국으로의 사행(使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산의 가까운 친구 한치응이 교리(校理)의 벼슬로서 발탁되어 서장관(書狀官)의 직책을 받자 얼굴에 뽐내는 빛을 띠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훌륭한 문명국가를 관광한다는 자부심과, 중화의 세계를 직접 찾아간다는 여러 의미가 겹쳐 기고만장한 생각을 지닐 만도 했습니다.
이때 다산은 친구 한치응을 중국으로 떠나보내는 송별사를 지었으니, 이름 하여 「송한교리사연서(送韓校理使燕序)」라는 글입니다. “대체로 해가 정수리 위에 있을 때를 정오(正午)라고 한다. 그러나 정오를 기준으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같으면 자기가 서있는 곳이 동서의 중앙임을 알게 된다. … 이미 동서남북의 중앙을 얻었으면 어디를 가도 중국이 아닌 나라가 없으니 왜 ‘동국(東國)’이라고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미 어디를 가도 중국이라고 한다면 왜 별도로 ‘중국’이라고 한단 말인가”라고 설명하여 특별히 중국이라는 나라에 가는 것을 뽐낼 이유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오랫동안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조선, 다산은 바로 이런 미망에서 벗어나 민족주체성에 눈을 뜨려던 뜻이 있었기에 나라 이름으로 문명국 여부를 가릴 수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시조작가 구중서 선생, ‘우리 땅이 중심이라’고 선언하면서 다산의 옛 이야기를 되살려낸 정신이 곱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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