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는 말: ‘한국의 오바마’는 가능할까
한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권력이다. 특히 헌법으로 대통령중심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국가원수가 국정에 대한 전결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대통령이 국정 운영과 정치를 잘하는 나라는 흥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뒷걸음을 친다.
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부문에서 좋은 업적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그가 임기 4년을 잘 치르고 재선되어 대통령 재임기간 8년에 대해 최상의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앞길을 불안하게 만드는 현상들이 취임 100일도 되기 전에 나타나고 있다. 아래의 글은 다소 강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런 불안의 배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낙관과 우려
지금 워싱턴 정가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와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 진보의 상징인 폴 크루그먼 교수와 대표적 보수 정치인이며 한때 초당적 내각의 일원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저드 그레그 상원의원이 최악의 경우 오바마 시대의 미래에 대해 내린 결론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미국의 파산’이다. (안병진 교수[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의 ‘오바마 리더십, 왜 흔들리나’, <프레시안> 2009년 4월 1일자)
위의 글은 오바마 대통령이 “시장친화적인 민관 배드뱅크로 승부수를 걸었지만 과연 지금 상황이 시장친화성에 더 집중해야 할 정도의 온건한 위기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고 주장하면서 “오바마 정부가 성공하기를 절실히 바라는 진보 논객 크루그먼조차 이에 대해 절망감을 표시할 정도”라고 말한다. 2008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이자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 후보를 열렬히 지지한 바 있는 크루그먼이 이렇게 빨리 오바마 비판에 나선 것은 상당히 뜻밖의 일로 보인다. 2009년 3월 23일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정부의 재원을 기초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최대 1조 달러의 부실자산을 처리한다는 ‘민관합동투자프로그램’을 발표하자,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의 칼럼을 통해 신랄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월 스트리트와 지나치게 밀착돼 있다는 세간의 인식을 확인시켜 주려는 것 같다”면서 그가 “노선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면, 이미 정치적 자산은 사라졌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비판과 우려를 근거로 오바마를 ‘대자본과 밀착하려는 대통령’이라고 낙인찍을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레이건과 부시 부자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수습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실천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2009년 초여름이 오기 전인 지금 아주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경제는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치는 다수 국민의 불신을 더 키워 갈 뿐이다. 교육은 정책의 혼란과 사교육 시장의 ‘공룡화’로 무정부상태에 빠지다시피 했다. 보수언론은 권력에 대해 곧은 비판을 하기를 포기하고 집권세력과 하나가 되어 특혜를 누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부닥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솟아오르는 역동성을 보여 왔다. ‘비 오는 날’이 지나면 ‘갠 날’이 온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은 노·장·청을 막론하고 지금 실의에 빠져 있겠지만 그들 역시 다시 일어설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대통령
‘어떻게 하면 다시 신명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이런 고민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의 오바마’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요즈음 한국사회는 국민의 믿음과 사랑을 받는 정치지도자가 고갈된 상태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서 갑자기 그런 지도자가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되기까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자신을 발전시켜 왔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오바마에게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적 의미의 인문학은 ‘인간이 처한 조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서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 구별되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넓게 사용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나는 서양의 이런 전통적 정의보다는 아래의 글처럼 ‘인간성에 대한 학문과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인문학에 접근하는 데 동의하면서 이 말을 쓰려고 한다.
주어진 상황에 굴하지 않는 인문학의 자유로운 정신과 실천의 의지는 인류를 폭력과 억압의 굴레에서 건져온 빛나는 전통이다. (···) 물질적 가치가 장악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물질로 대체할 수 없는 정신의 가치를 자각하고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
(···) 인문학은 중심에서 소외된 현재의 위치로 인해, 인간으로부터 소외된 자연, 중앙으로부터 소외된 지방, 물질로부터 소외된 정신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우며 지배적 권력의 위험성을 저지할 비판적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려대 세종캠퍼스 미디어문예창작과 이해원 교수의 ‘인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방향’, <KUS Magazine> 2008년 가을호에서)
요즈음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인문학의 가치와 동력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전혀 모르는 정치 지도자들이 인간성과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자연과 친화하면서 우주의 섭리를 하나씩 배워 나가야 할 청소년들에게 점수 위주의 비인간적 경쟁을 강요하면서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일은 인문학적 교육이 아니다. 인간이 어머니처럼 섬겨야 할 대지를 삽질로 파헤치고 망가뜨리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인문학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버락 오바마는 인문학적 소양을 제대로 갖춘 정치인이자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이런 소양을 길러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케냐에서 하와이로 유학 온 흑인 청년과 사랑을 나누면서 결혼하고, 그와 이혼한 뒤에는 인도네시아 남성과 재혼할 정도로 자유분방했던 어머니의 삶은 어린 ‘배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인류학을 공부한 어머니는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편견 없는 마음과 눈으로 인간과 자연을 보고, 아들에게 알게 모르게 자신의 세계관을 심어 주었다. 오바마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1,2 학년 때까지 ‘흑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그 이후로는 균형 잡힌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문학적 소양 덕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오바마의 그런 정신적 자산은 하버드 법학대학원(로스쿨)에서 꽃을 피운다. 1988년 그 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1학년 말에 <하버드 로 리뷰>(The Harvard Law Review) 최초의 흑인 편집장으로 뽑힌다. 그리고 2학년에 올라가서는 그 정기간행물의 회장이 된다. 1887년 4월 15일에 창간된 그 법학전문지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평론집 중 하나이다.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언론매체들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진다. 오바마가 단순히 흑인이라서가 아니라 법학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글을 쓰거나 간행물을 편집하는 데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이 탁월했기에 언론이 주목했을 것이다.
봉사정신과 인간애
다음으로, 오바마의 정치적 자산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하면서 터득한 봉사정신과 인간애이다. 그는 시카고시 외곽 사우스 사이드에서 생존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흑인들의 참상을 몸소 보면서 그들을 위해 어떻게 일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다. 이것은 오바마와는 다른 면에서 청소년기를 불우하게 보낸 빌 클린턴과는 판이한 삶이었다.
우리는 한국의 정치지도자들 중 대다수가 청소년 시절의 가난과 고생을 ‘출세’로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보수적 정치인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정치권으로 간 사람들 일부에서도 드러나는 현상이었다. 소중한 이념과 가치를 지키면서 올곧게 살다가 권력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 ‘맛’에 빠져들면, 그 자리를 평생 유지하거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오바마가 몇 해 전에만 해도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는 데는 그가 진지하고 성실하게 바닥부터 닦아온 정치력이 큰 작용을 했다. 그는 1992년 4월부터 10월까지 10명의 스태프, 700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유권자 등록운동인 ‘일리노이주 투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운동은 일리노이주에서 등록하지 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40만명 중 15만명을 등록시킨다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했다. 이것은 그가 ‘풀뿌리 사회’에서 효율적인 조직운동을 배우면서 정치력을 길러갔음을 말해 준다.
자기 표현력
오바마의 정치적 자산 중 두드러진 것으로 뛰어난 자기표현력이 있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전국에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그런 능력 때문이었다. 그는 2004년 7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직접 쓴 원고로 ‘기조연설’을 한다. 그는 미국 정부의 사회경제적 정책들이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 수행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선거인단에 관한 당파적 편견을 지적하면서 미국인들은 다양성에서 단합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미국도 없고 보수주의 미국도 없습니다. 아메리카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그의 이 연설을 910만여 명이 텔레비전으로 본다. 오바마는 거기서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존 케리보다 더 강하게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심는다.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보좌관이 써주는 원고를 읽는 데 반해 오바마는 스스로 구상해서 작성한 연설문을 정확한 발음과 매력있는 음색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장기를 가지고 있다. 그가 자서전 격인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다양한 이념과 정책과 세계관을 정리한 <담대한 희망>을 직접 저술한 것은 그의 문장력과 함께 앞에 말한 인문학적 소양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오바마는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부자이다. 그는 책을 써서 받은 인세 수입으로 2005년에 시카고의 하이드 파크에서 부근의 켄우드로 이사하는데, 아파트 값은 2009년 시가로 160만 달러(원화로 약 24억원)이다. 2007년 12월에 <머니>(Money)라는 잡지는 오바마 부부의 가계소득을 420만 달러(44억여원)로 추산했는데, 전년도보다 100만 달러쯤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부자인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 남짓만에 중하위계층을 위한 대대적 감세정책을 발표함으로써 부시 2세 재임기에 감세 혜택을 누리던 부자들과 보수세력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대통령이 부자라고 해서 자신과 같은 부류의 소수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서 집행하면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2007년에 시작된 민주당 예비경선부터 탁월한 매체 활용력을 보였다. 그가 ‘윌 아이 앰’(Will.I.am)에 의뢰해서 제작한 비디오는 첫 달에 유튜브에서 무려 1,000만여명이 보았고, ‘에미상’까지 받았다. 버지니아대의 조나산 헤이트 교수가 조사한 것을 보면 오바마의 대중연설은 청중의 정서를 고양시키면서, 타인을 위해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착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킨다고 한다.
오바마는 대통령선거에서 인터넷을 가장 잘 활용한 후보였다. 선거 기간에 온라인에서 오바마 후보를 지지한 미국인은 1,000만명이 넘었다. 그중 300만여명은 인터넷 모금에 앞장서서 대선 기간에 오바마 캠프가 모은 6억6,000만 달러 중 4억 달러 가량을 보냈다. 오바마 당선자는 웹사이트에 ‘아메리칸 모먼트’(American Moment)라는 코너를 만들어서 정책 제안을 공모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오바마가 “새롭고 현대화한 21세기의 도구들을 활용함으로써 미국 대통령의 개념을 완전히 새로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오바마의 또다른 장점은 자기관리능력과 결단력이다. 그는 대선 기간에 ‘신앙의 스승’인 제레미야 라이트 목사의 ‘갓 댐 아메리카’ 발언이 폭풍을 몰고 오자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고 과감하게 그와 결별했다. 그리고 장관이나 백악관 요직에 지명한 사람들의 도덕적 결함이나 위법행위가 드러나면 단호하게 임명을 포기했다. 그리고 만약 한 해 42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 오바마 부부가 단 몇 백 달러라도 탈세를 했다면 그는 아예 대통령후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능력을 잘 보여준다.
새롭고 진취적인 정치지도자들과 정치조직을
버락 오바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지도자로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한계를 안고 있다. 그가 조작되거나 왜곡된 미국의 역사를 부정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허상일지라도 ‘미국인의 우상들’에 대한 숭배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그리고 이 책에서 여러 번 지적했듯이, 미국의 보수세력과 기득권층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아프간전쟁을 과감하게 끝내지 못하고 소극적으로나마 ‘팍스 아메리카나’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도 그의 큰 부담이다.
한국사회는 밝은 미래를 위해 새롭고 진취적인 정치지도자들과 정치조직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단순히 버락 오바마를 모방한다고 해서 목적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오바마의 장점을 진지하게 학습하고 그의 한계는 냉정하게 인식하면서 창조적인 노력을 꾸준히 해야 국민의 사랑과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정치지도자들과 정당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상으로 '오바마시대와 한국'의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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