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술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로 살아갈 때, 깨어 있는 사람의 마음은 아프기 마련입니다. 아무도 세상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하지 않는데, 혼자서 시국에 대한 깊은 시름에 빠지는 것도 어색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힘도 능력도 없는 노인네가 혼자서 걱정한다고 해결될 기미도 없으니, 마음만 괴롭고 아프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산이 노년기에 지은 「출협(出峽)」이라는 시를 읽어보면, 그의 고민이 무엇이었고, 그런 고민을 풀기 위해 경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에 동의하게 됩니다. 사람 된 도리로 나라와 세상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걱정하고 근심한다고 해결될 세상이 아니었기에, 마음을 달래려고 심오한 경전의 뜻풀이에나 마음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요즘도 세상은 순조롭게 돌아가지 못합니다. 정치·경제·사회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가지 않으며, 민주주의나 남북관계도 바라는 만큼 확연한 진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문제로 근심과 걱정을 아니할 수 없으나, 걱정하고 근심한다고 풀리지도 않습니다.
협곡에서 나오니 하늘 땅 크기만 한데 出峽乾坤大 배를 묶자 풀과 나무 움직이지 않네 維舟草木停 먼 산봉우리엔 소나무가 검은 점 이루고 遠峯松點黑 갠 물가에는 백로 지나간 물길 푸르러라 晴渚鷺絲靑 강물이야 흘러오고 흘러가는데 水上來還去 사람들은 취해서 깰 줄을 모르네 人間醉不醒 시대를 아파한들 무슨 보탬 있으랴 傷時竟何補 머리 하얀 늙은이 경이나 깊이 연구해야지 頭白且窮經 (出峽)
근심하고 걱정한다고 어떤 보탬도 없건마는 그렇다고 눈을 감고 생각을 닫을 수도 없는 인간, 마음이라도 식히기 위해 경이라도 깊이 연구하겠다는 다산의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이 변하고 바뀌듯이 강물이야 흘러오고 흘러가는데, 정신 나간 인간들만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술에 취해 깰 줄을 모른다니 얼마나 답답한 세상입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 줄도 모르고 방울소리만 듣고 따라가는 눈먼 말처럼, 다산이 살아가던 시대에도 취객들이 많았나봅니다. 세상이 온통 그러하건만 상시분속(傷時憤俗)을 잊지 않으며 똑바로 깨어 있는 자세로 살아갔던 다산의 삶이 느껴집니다. 경(經)으로 마음을 달래고 심신을 가다듬던 자세가 부럽습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목록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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