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823

[스크랩] 기린의 목은 갈데없어 / 이병일 / 제16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기린의 목은 갈데없이 이병일 기린의 목엔 광채 나는 목소리가 없지만, 세상 모든 것을 감아올릴 수가 있지 그러나 강한 것은 너무 쉽게 부러지므로 따뜻한 피와 살이 필요하지 기린의 목은 뿔 달린 머리통을 높은 데로만 길어 올리는 사다리야 그리하여 공중에 떠 있는 것들을 쉽게 잡아..

[스크랩] 나는 누구인가의 지주이다 / 차주일 / 제5회 시산맥 작품상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이다 -늙은 삼각형의 공식 차주일 땀내 한 다랑이 경작하는 농사꾼과 악수할 때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악력(握力)은 삼각형의 높이이다 얼굴이 경작하는 주름의 꼭짓점마다 땀방울이 열려 있다 땀이 늙은이 걸음처럼 느릿느릿 흘러내리는 건 얼굴에서 발까지 선..

[스크랩] 굴참나무를 읽다 / 김현희 / 제14회 산림문화 작품 대상작

제14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대상작 ​ 굴참나무를 읽다 김현희 옹이와 한 몸으로 사는 나무에선 묵은 종이 냄새가 난다 찢어진 쪽수처럼 상처는 나무의 이력을 늘려간다 청설모는 굴참나무의 교정사 밑줄 긋듯 나무를 타고 오르며 상수리를 정독하고 솎아 낸 탈자들로 새끼를 키운..

[스크랩] 제18회 《지용신인문학상》당선작 - 쥐, 세입자들/민슬기

쥐, 세입자들 / 민슬기 남의 집에 구멍을 빌려 지으면서 시작된 식탐이다 무엇이든 훔쳐야 직성이 풀리는 업보다 어둠을 갉아먹으며 사람들의 은밀한 말소리를 귀담아듣는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으므로 속절없이 칸칸이 들어찬 어둠을 헤맨다 침묵이 답이라 믿으며 썩은 음식물 냄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