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남(언론인)
박정희 유신시대에도 행정기관 이전과 수도분할 논의가 있었다.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되어 복역 중이던 DJ가 이 소식을 듣고, 봉함엽서에 깨알같은 글씨로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이 옥중서신(1977년 11월 29일자)을 통하여 자신의 견해를 세상에 밝히는 것이다. 그의 수도론은 폭넓은 독서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소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수도란 어느 나라의 경우에나 지리적 중심이라는 잇점이나 집권자의 편의에 따라 정해진 것이 아니라, 국토방위의 전방에서 싸우고, 짓밟히고, 되찾고 하는 피투성이의 투쟁 속에서 한 나라의 수도라는 영광과 국민의 총애를 받아왔다. 그는 런던, 파리, 베를린, 페테르그라드, 델리, 베이징北京 등이 수도가 된 역사적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들 도시는 한결같이 위협세력에 그 최전선에서 맞서 싸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DJ의 수도론, ‘최전선에서’
우리나라의 역대 수도는 고구려가 남천(南遷)한 것을 비롯, 백제와 고려의 수도가 모두 다 소극적 수호에 치중하고, 적극적 개척에 등한했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이 조선(朝鮮)의 수도로 정해지는 과정은 도참사상에 따른 것으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행한 분단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지금 서울의 위치는 가장 올바른 수도의 자리라는 것이다.
한강의 북쪽, 휴전선에서 불과 25km의 거리에 있어, 거기서 정부와 국가의 지도적 인사들이 국가방위에 끊임없이 긴장하며 숨쉬고 있을 때, 국민들에게는 국가에 대한 믿음과 협력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솟아오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세계수도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민족이나 국가나 개인이나 휘몰아치는 풍운의 역사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시련 앞에 감연히 머리를 들이대고, 가슴을 펴고 그 도전을 받아들여 슬기로운 응전을 한 자만이 행운과 승리, 그리고 신의 축복을 얻어낼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은 수도분할이나 행정기관 이전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세종시 문제의 연원이 된 행정수도론은 처음부터 깊은 고뇌나 경륜의 산물이 아니었다. 이 나라가 맞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나 발전전략을 반영하여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깊이있는 토론이나 국민적 합의과정을 거친 것은 더욱 아니었다. 다만 2002년 대선과정에서 ‘재미를 좀 보기 위하여’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대선공약의 하나였을 뿐이다.
재미를 좀 본 것만으로 끝냈더라면 좋을 일이었다. 또 2004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을 때 일찌감치 접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쯤에서 멈추었더라면 이 나라 이 국민이 이렇게 분열되고, 이 공동체가 저처럼 혼란스럽게 되지는 않았을 것을, 어쩌자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끌고나가 말뚝까지 박았더란 말인가. “멈출 줄을 알면 위험하지 않다” 지지불태(知止不殆)라는 옛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수도분할을 전제로 하는 행정기능중심 복합도시라는 긴 이름의 이른바, 세종시 원안이라는 것이 그래서 나왔다. 발상자체가 포퓰리즘에서 비롯된 것이거니와, 이 법안이 발의되면서부터 사려가 없기는 여·야가 마찬가지였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싶다”던 사람은 자신의 이름표로 된 명품도시로 원안대로 건설하겠노라고 공약까지 했다. 어제 반대했던 사람이 오늘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렇게 ‘바보들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세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도시를
그들은 걸핏하면, 충청권·충청인을 들먹인다. 충청도 사람들 가운데도 원안에 찬성하지 않는 생각 깊고 건강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굳이 밝히자면 나도 충청인이다. JP같은 이도 “엄격하게 국가차원에서만 볼 때는 그리 갈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지 않던가.
총리후보 정운찬이 “원안대로 추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하고 나선 것은, 적어도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비로소 멈추어 서서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가장 쉽고 편한 원안 대신 다른 길을 찾자는 목소리가 이제사 겨우 나오고 있다.
뒷날 ‘당신들은 고작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들이었느냐’고 우리시대가 추궁당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그 올바른 해법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왕 새로운 길을 찾는다면, 원안을 축소하거나 변형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대한민국표 명품도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모두가 다 이기는 길이다.
모처럼 확보된 2천2백만평에 한민족의 꿈을 그리자고 말하고 싶다. 서울대학교 정도의 이전이 아니라, 인류의 진보를 이끌고 세계를 경영해나갈 인재를 육성하는 글로벌 대학을 거기에 세우고, 두루 인간을 이롭게 할 홍익문명을 발진시킬 본부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어떨까. 억지춘향으로 짜맞추는 도시가 아니라, 세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한민족 시대의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