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의 아름다운 만남과 큰일을 해냈던 만남의 하나가 다름 아닌 정조와 다산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정조 없는 다산의 존재도 문제지만, 다산 없는 정조 또한 큰 업적을 이루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저는 정조와 다산은 ‘어수지계(魚水之契)’의 관계였다고 표현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이 없는 곳에서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물고기는 물을 만나야만 활발하게 헤엄치면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조 같은 임금과 다산 같은 신하의 만남이 바로 대표적인 ‘어수지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산의 글 「발상형고초본」(跋祥刑攷艸本)을 읽어보면 정조의 마음과 다산의 마음은 어떻게 그렇게 동일했었는가를 금방 짐작해낼 수 있습니다. 다산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간의 죄와 벌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했습니다. 『목민심서』의 「형전」(刑典)에는 얼마나 자세하게 ‘죄와 벌’에 대한 기술이 있었는가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아래, 다산은 불쌍한 수인(囚人)들의 식사문제, 질병문제, 춥고 더운 문제에까지 세세한 보살핌을 역설하였습니다. 「형전」에서 한 단계 더 올려 『흠흠신서』라는 전문 연구서에서는 정말로 신중하게 수사를 하고, 참으로 은혜롭게 죄수들을 보살펴서, 억울한 재판이 없기를 그렇게도 바랬던 것이 다산의 형벌관이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 대체로 불쌍한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삼가하고 조심스럽게 수사하고 재판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정조와 다산은 같은 마음으로 그런 정책을 펴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녔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정조대왕의 훌륭한 덕과 위대한 업적은 역사책에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인데, 형벌내림에 긍휼한 마음을 지녔고, 수사와 재판을 신중하게 했던 것은 더욱 임금께서 깊은 관심을 지녔던 분야였다.”<발상형고초본>라는 표현에서 정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형전」에서 다산이 그렇게 강조했던 ‘휼형신옥(恤刑愼獄)’, 즉 형벌 받은 사람을 긍휼히 여김과 수사와 재판을 조심스럽고 삼가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정신을, 정조도 그렇게 강조했던 일이라니, 그 임금에 그 신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래 우리 사회에는 흉악범이 늘어나고 성폭력범이나 반인륜적 범죄가 속출하면서 형량만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범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는 아예 언급도 없습니다. 그런 범죄를 사회와 국가에서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나,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의 논의도 부족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긍휼심과 삼가함을 앞세워 죄인의 대접에 소홀함이 없게 하자던 다산과 정조의 마음을 읽어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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