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로드킬과 박제가의 도로 / 강명관

문근영 2018. 12. 11. 01:49

제150호 (2009.9.9)

 

로드킬과 박제가의 도로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휴일에 간절곶에 바다 바람을 쐬러갔다. 다정한 바다를 보고, 차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월내역을 부근을 지날 때 도로 한 복판에서 흰 개 한 마리가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버둥거린다. 일어서려고 용을 쓰지만, 앞의 두 다리를 곧추 세울 수가 없다. 비틀거리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려고 버둥거린다. 뇌를 심하게 다쳤기에 일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지는 승용차에 머리를 호되게 치였을 것이다. 사람을 치었다면 범죄가 되겠지만, 개를 친 것은 아무런 죄도 되지 않기에, 버려두고 그냥 내뺀 것이리라. 안쓰러운 모습을 뒤로 하고 지나자니, 뭉클한 것이 가슴에 치밀어 오른다. 저 생명은 어쩌다 저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인가?


도로에 남은 비참한 죽음의 흔적


내가 본 흰 개의 죽음은 사실 허다한 ‘로드킬’의 한 경우일 뿐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로드킬’의 흔적을 자주 만난다. 개일 수도 있고, 고양이일 수도 있고, 새일 수도 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짐승일 수도 있다. 불과 몇 시간 전, 며칠 전까지 제 홀로 움직였던, 감정이 있던 생명체는 아스팔트 바닥에 바싹 말라붙어 피와 털가죽의 흔적으로만 자신의 과거가 한낱 사물이 아니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 건조한 시신조차 자동차 바퀴에 묻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로 위에 흩뿌려질 것이니, 한때 생명이었던 그들은 한 곳에서 잠들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도 길을 만들고 짐승도 길을 만든다. 짐승의 길은 자연 속에 스며들어 있다. 멧돼지와 사슴, 고라니, 토끼가 살아가며 만드는 길은 횡단보도도, 가드레일도, 신호등도 없다. 그들의 길은 자연 속에 포함된 길, 곧 자연의 길이라, 자연에 눈이 밝은 사람이라야 겨우 그 길을 찾아낼 수 있을 뿐, 문명화된 도회의 인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걸어서 다니던 전근대의 길 역시 짐승의 길처럼 자연을 벗어나지 않았다. 소와 말이 끄는 수레가 오가던 길 역시 자연의 길과 크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길에는 멧돼지와 사슴, 고라니, 토끼도 다닐 수 있었다. 그 어떤 짐승도 수레에 치여 죽는 일은 없었다.


자동차가 다니면서 사람의 길은, 오직 사람만을 위한 길이 되었다. 자동차 길은 두 장소를 직선으로 잇는다. 곧으면 곧을수록 공간은 압축되고, 압축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좋은 길로 환영을 받는다. 하지만 그 직선은 면을 분할한다. 직선의 폭이 크면 클수록 길면 길수록 분할된 면은 커지고, 두 면은 더욱더 만날 수 없다. 자동차의 길로 인해 생기는 면의 분할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령의 삶을 찢어버리는 폭력이 된다. 어쩌다 그 폭력적 분할을 뛰어넘으려면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문제는 이 분할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도 자동차를 위한 곧고 넓은 도로는 하염없이 더 생길 것이고, 아마도 더 많은 생명을 죽일 것이다.


박제가의 도로가 죽음의 도로는 아녔을 텐데


박제가는 북경을 다녀오면서 가로수와 하수구를 갖추고 있는 중국의 도로에 한낮에도 수레바퀴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리는 것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귀국하여 『북학의』를 저술하면서 「수레」와 「도로」를 특설하고, 조선 역시 도로를 정비하고 수레를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도로와 수레는 박제가 경제학의 상징이다. 그는 도로와 수레는 물산의 유통을 촉진할 것이고, 물산의 활발한 유통은 다시 생산을 다시 자극해, 결과적으로 백성이 가난을 벗고 윤택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직선의 넓은 도로가 사통팔달하고 그 도로 위에는 쇠로 만든 수레들이 질주한다. 국내의 물화만이 아니라, 수천 킬로미터 바다를 건너온 물화가 고속도로를 메운다. 박제가가 간절히 바랐던 세상이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그 도로와 수레는 오직 인간의 무한한 소비를 위한 것일 뿐이다. 생명에 대한 배려, 공존에 대한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박제가가 바란 도로가 이런 것이었을까? 박제가가 생각한 도로는 적어도 생령을 죽이는 도로는 아니었을 것이다. 공존을 위한 해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시비를 던지다』, 한겨레출판사, 2009 등 다수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