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병 욱(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4월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풍습을 따라 1995년 유네스코가 ‘책과 저작권의 날’로 지정했다. ‘성 조지’ 축제일인 이날 카탈루냐에선 연인끼리 책과 장미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날 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도 세상을 뜬 게 알려지자 이참에 세계인 독서진흥의 계기로 삼자며 책의 날로 정했다는 것이다.
세계 80여 나라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며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문화부장관과 작가, 시인, 배우들이 여러 곳에서 책 낭독 모임을 갖고 시민들에게 책과 장미를 나눠준다. 출판인들도 대형 서점을 찾아 ‘책 값싸게 돌려 읽기’ 캠페인을 벌인다. 가뜩이나 독서열이 퇴색한 요즘, 이렇게라도 책읽기를 권장하는 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남의 풍습을 따라 ‘덩달이’ 마냥 반짝 행사를 치르는 데 대해 씁쓸함을 넘어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한출판협회가 정한 ‘책의 날’은 10월11일 속 좁은 문화적 배타주의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현재 세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줄여서 직지심체)과 목판본 책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찍어낸 나라요, 민족이 아닌가. 또 무려 240년간이나 공을 들여 8만1천여 나무판에 불전(佛典) 5천2백만 자(字)를 새긴 인류문화의 보물, ‘팔만대장경’을 보유한 책 문화 강국이 바로 우리 아닌가.
서양에선 ‘지난 1000년간 최대사건이며 서양문화의 아침을 연’ 쾌거로 구텐베르크 인쇄술을 꼽는다. 그런데 고려는 그 보다 한 세기 이상 앞서 이미 찬란한 인쇄시대의 막을 올렸다. 앨 고어 전 미국부통령은 2005년 “세계는 금속인쇄술에 이어 유비쿼터스까지 두 번이나 한국에 큰 신세를 졌다”며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인쇄술은 한국에서 건너온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정수일-한국 속의 세계). 지식과 종이, 활자의 행복한 만남을 통해 책을 대량생산하는 원조 기술이 한국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자, 이런 우리가 이젠 거꾸로 서양의 기념일을 빌어 책에 대한 열기를 끌어올린다고 부산하다. 젊은이들은 앞선 우리 문화엔 깜깜인 채 카탈루냐 사람처럼 책과 장미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1987년, 팔만대장경이 나온 1251년 10월11일(양력 환산)을 기려 책의 날로 봉정했지만 아무도 그날은 기억하지 않는다. 협회조차 유공자 표창 정도 행사만 하고 지나간다. 이러니 한국에서 책의 날은 누가 뭐래도 4월23일로 굳어졌다.
지식과 문화를 습득하고 이어가는 최고 수단인 독서를 고취하자는데 국적을 따지는 건 소아병적이란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정한 날, 내가 가진 역사, 남보다 뛰어난 기록이 엄연히 있는데도 그건 놔둔 채 남의 풍습, 남의 기념일을 무비판적으로 따라하는 것도 분명 좋은 건 아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요, 배알조차 없다고 핀잔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방송사의 무관심, 그것만 탓하기엔 더욱 속상하는 건 정작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들의 철저한 무관심이다. 공영을 강조하는 TV방송사들이 올해 초부터 책 관련 프로그램은 몽땅 들어내 버렸다. 교육방송조차 교양으로서의 책 프로를 하나도 운영하지 않는다. 스페인이나 그 주변 나라들이 ‘책 관련국’ 칭호를 따기 위해 심지어 드라마에까지 책 읽는 모습을 넣도록 종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하기야 우리 정부가 문화부 출판 부서에 독서문화진흥을 위해 배정한 예산이 국민 1인당 40~50원에 불과할 뿐이다. 방송사를 탓할 이유가 없다. 이러고도 아이들에게 책과 장미를 나눠주며 책 읽기를 습관화하자고? 그것보다 우리 나름의 책의 날, 독서의 날을 당장 정부 차원에서 지정하는 게 더 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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