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남(언론인)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나는 정치란 상충하는 국민의 권익을 공동선(共同善)의 방향으로 조정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 수준 높은 정치는 국민으로 하여금 공동체의 내일에 대한 희망을 함께 꿈꾸게 하고, 이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을 더 없는 보람과 긍지로 느끼게 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것까지는 언감생심 바라지 못한다하더라도, 그 권익이 상반되는 양측으로부터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돌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그래도 공동선을 위하여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바로 이 길’이라고 외치는 그런 정치를 단 한 번만이라도 나는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 정치가 국민내부의 통합에 기여하고,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탄력을 더해주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고 싶다.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인데도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꼭 기적만 같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는 지난 2월의 전기톱과 해머로 하여, 이제는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한 점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그 누구로부터도 볼 수가 없다.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하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다.
당신은 그때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가 그런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하나는 그들의 도덕성, 역사성에 관한 것이다. 누가 나더러 개혁은 무엇으로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거침없이 개혁은 도덕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정의롭게 비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국민 앞에 서서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있으며, 동서양의 옛 성현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정치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집단이 강도의 집단과 무엇이 다를 수 있으랴.
나는 30여년에 걸친 권위주의적 군사정치문화를 걷어내고 이 땅에 다시는 정치적 밤이 없게 한, 나라의 민주화야말로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정부수립에 버금가는 일대 사건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제처 두고라도, 문민정부는 3당 통합을 바탕으로, 그리고 국민의 정부는 유신본당과의 결합으로 출범한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민주화의 성취를 마음껏 자축하지도 못했고, 반민주를 청산하지도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민주의 이름으로 반민주의 편에 섰던 사람들을 향하여 “그때 너희는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느냐”고 정식으로 물어보지도 못했고, 집단적 통회(痛悔)의 시간도 가지지 못했다.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제척(除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의는 반드시 망하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역사적 공의(公義)를 바로세워 놓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해방 후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한 것과 방불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생들을 고문과 용공조작으로 처단하였던 검사, 판사, 그리고 그러한 정권의 하수인이었던 정치인과 폭압에 협력한 언론인들이 민주화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큰소리치고 있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과 그들의 자식 앞에서 그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끝까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갈 길을 놓고 고뇌해본 적이 있는가 또 하나, 나는 그들이라면 이 나라 이 공동체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놓고 한번쯤 밤을 새워 고뇌해 본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울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멈추어 서서 진지하게 고뇌해 본 적이 있느냐고는 물어보고 싶다. 여야 정치권이 하는 짓을 보면, 거기에는 전혀 고뇌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60년 동안, 물론 성취한 것도 많다. 정치민주화, 근대적 경제성장, 사회문화적 다원성 고등교육, 과학기술발전 등을 들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수도권 집중율, 이혼증가율, 자살증가율이 1위요, 최고수준의 생활비지수, 최저수준의 행복지수, 국민의 상당수가 조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민희망율 1위에 OECD국가 중 사교육비지출이 가장 높다.
거기다 우리는 급격히 고령화와 다문화사회로 이동하고 있으며,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외국으로부터는 이미 성장동력이 꺼져버린,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린 나라,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나라, 심지어는 ‘방향 잃은 배’로까지 불리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분열과 해체의 위험에 직면해있는 대혼란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태는 심중하고, 갈 길은 멀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싸움만 하고 있는 것이다. 갈 길을 놓고 불면의 밤을 새워 토론해야 할 지금, 너희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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