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년은 을축(乙丑)년으로 다산의 나이 45세의 좋은 때였습니다. 강진읍내에서 귀양살이 5년째를 맞았는데, 그 무렵부터 가까이 지내던 10세 연하의 뛰어난 선승(禪僧) 혜장선사(惠藏禪師)와는 하루가 멀다 여기며 자주 만나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었습니다. 다산의 기록을 살펴보면 허술하고 비좁은 주막집인 「사의재(四宜齋)」라 명명한 토담집에서 살아야 했지만, 혜장의 도움으로 강진읍내 뒷산의 고성사(高聲寺)라는 보은산방(寶恩山房)에도 자주 들렸고 혜장의 거처인 백련사에도 찾아가 노닐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다산은 혜장에게 '산거잡흥'(山居雜興)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으라고 권유했으나, 시를 지어 보내지 않으니, 다산 자신이 '산거잡흥'이라는 제목의 시 20수를 짓고 말았습니다. 스님에게 지으라고 요구한 시였기에, 주로 선어(禪語)를 구사하여 지은 것인데 20수 어느 것 하나 절창이 아닌 시가 없습니다. 고달픈 귀양살이의 서러움과 괴로움도 잊고, 아름다운 산골의 여러 가지 흥취를 그림처럼 선명하게, 곱고 아름다운 시어를 모두 동원하여 참으로 멋있고 품격 높게 그려냈습니다.
제비집의 새끼 제비 깃이 점점 돋아나고 燕家兒子漸生翎 어미 제비 가끔 와서 불경 소리 듣는다네 燕母時來亦聽經 아무리 독경소리 들어도 불성(佛性)이 없는터라 終是天機非佛性 그냥 날아가서 잠자리 낚아채네 還飛去捕綠
뛰어난 시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겠습니까. 불경·천기(天機)·불성(佛性)이 모두 불교의 용어인 선어(禪語)들이니, 불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짓기 어려운 시임에 분명합니다. 한 폭의 그림이면서도 시이고, 시이면서도 그림인 것을 이런 시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듯이, 소에게 독경을 해준다고 알아들을 이유가 없지만, 제비에게 불경을 읽어준다고 불심이 살아날 이유가 있겠습니까. 어린 새끼 제비들에게 먹이를 주어야 한다는 본능만이 살아 있기에, 불경 읽는 소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곧 바로 날아가 잠자리를 낚아채는 어미 제비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합니다. 살생을 금하라는 불경의 내용을 듣고도 제비는 잠자리를 붙잡아야 했으니 딱하기만 합니다. 산골마을의 여름날 풍경이 다산의 솜씨로 제대로 살아나 보입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