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4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 당선작] 이병철 [제4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 당선작] 이병철 수평선을 걷는 장화들 파랗고 맑은 냉기에도 코가 얼지 않는 우리는 언제나 싱싱한 뒤축으로 수평선을 걷는 장화들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수심(水深)이 깊어질수록 바다의 과거를 잘 기억하는 오래된 가죽장화, 유빙에다 이마를 닦.. 좋은시 2019.02.11
[스크랩] 화살 / 김기택 화살 김기택 과녁에 박힌 화살이 꼬리를 흔들고 있다 찬 두부 속을 파고 들어가는 뜨거운 미꾸라지처럼 머리통을 과녁판에 묻고 온몸을 흔들고 있다 여전히 멈추지 않은 속도로 나무판 두께를 밀고 있다 과녁을 뚫고 날아가려고 꼬리가 몸통을 밀고 있다 더 나아가지 않는 속도를 나무 .. 좋은시 2019.02.11
[스크랩] 빨랫줄 / 서정춘 빨랫줄 서정춘 그것은,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줄 같다 그것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망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 아래 이쪽.. 좋은시 2019.02.11
[스크랩] 지구의 눈물 / 배한봉 지구의 눈물 배한봉 둥근 것들은 눈물이 많다, 눈물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칼로 수박을 쪼개다 수박의 눈물을 만난다 어제는 혀에 닿는 과육 맛에만 취해 수밀도를 먹으면서 몰랐지 사과 배 포도알까지 둥근 몸은 모두 달고 깊은 눈물왕국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눈물왕국을 .. 좋은시 2019.02.11
[스크랩] 열과(裂果) / 안희연 열과(裂果) 안희연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흘러간 것과 보낸 것은 다르지만 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문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 다 훔쳐가도 좋아 문을 조금 열어두고 살피는 습관 왜 어떤 시간은 돌이 되어 가라.. 좋은시 2019.02.11
[스크랩] 절개지 / 윤석산 절개지 윤석산 도로를 내기 위하여 지난 한 해 내내 산을 허물고 자르고, 그래서 생긴 절개지 한겨울 지나고 나니, 온갖 잡풀들 다시 어우러져 꽃을 피우며 벌겋게 드러났던 흙의 살점들 덮고 있구나. 머리를 깎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마취를 하고, 한참을 죽었다가 깨어나니 사라진 그.. 좋은시 2019.02.11
[스크랩] 수식변폭(修飾邊幅) / 이순희 수식변폭(修飾邊幅) 이순희 온갖 평을 주렁주렁 걸친 시가 인사동을 활보한다 어릿광대 같다 늙은 여자가 목걸이 팔찌 귀걸이 집에 있는 온갖 반지는 다 끼고 나와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고 흔드는 것 같다 몸에 맞는 한 벌이면 족한 것을 시의 몸은 보이지 않고.. 좋은시 2019.02.11
[스크랩] 나라 없는 사람 / 장혜령 나라 없는 사람 장혜령 잊지 못합니다 흰 개의 그 마지막 눈빛을 트럭에 태워지던 날, 자신의 운명을 물으며 찡긋거리던 검은 코의 물기를 어려서 알았지요 우리는 자라서, 어딘가에 실려 하염없이 떠나게 된다는 것을 곡마단 남자들을 보며 배웠지요, 그 여름 소독차가 동네를 한 바퀴 돌.. 좋은시 2019.02.11
[스크랩] 박쥐 / 함명춘 박쥐 함명춘 별채에 박쥐 한 마리 날아들었다 침묵은 그의 유일한 세간살이였고 어둠은 그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그는 그 외의 일체의 어떤 것도 탐하지 않았다 먹지도 않았다 별채는 마을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있었다 입주하자마자 그는 장도리처럼 곳곳에 박힌 햇볕을 뽑아냈.. 좋은시 2019.02.11
[스크랩] 식물도감 / 안도현 식물도감 안도현 * 호박씨 한 알 묻었다 나는 대지의 곳간을 열기 위해 가까스로 땅에 열쇠를 꽂았다 * 산수유 가지에 새가 앉았다가 골똘히 무슨 생각 하더니 날아간다 꽃 이름을 몰라서 갸웃거렸을까 새야, 다음에 올 때는 식물도감 들고 오너라 * 작년에 죽은 친구야, 벚나무 아래 놀던 .. 좋은시 2019.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