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박쥐 / 함명춘

문근영 2019. 2. 11. 10:05

박쥐

 

   함명춘

 

 

 

별채에 박쥐 한 마리 날아들었다

침묵은 그의 유일한 세간살이였고 어둠은 그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그는 그 외의 일체의 어떤 것도 탐하지 않았다 먹지도 않았다

별채는 마을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있었다

입주하자마자 그는 장도리처럼 곳곳에 박힌 햇볕을 뽑아냈다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두려움이 그를 덮쳤는지

저녁 어스름이 질 때만 그는 어디론가 나갔다가

크고 단단한 침묵과 어둠을 등에 한 짐 지고

동트기 전 새벽이슬을 밟으며 돌아왔다

언제부턴가 그 짐은 무언가를 짓는 데

필요한 재료로 사용되었다 날마다 그는

자갈이나 모래처럼 침묵과 어둠을 섞어 공그리를 치고

바닥을 다진 뒤 벽을 세웠다 그렇다,

그는 별채 속에 더 큰 별채를 짓고 있었다

별채 속의 별채가 완성된 듯 더 이상 그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문 앞엔 갖가지 고지서와 신문이 쌓여갔다

우리는 그 별채에 한 발자국도 접근할 수 없었다

별채 주위엔 깊고 높은 고요의 담장까지 세워져 있어

우리들의 신장박동마저 귀청이 나갈 정도로 큰 소음이 되었고

당연히 사소한 그 어떤 한 마디의 말조차도 꺼낼 수 없었다

각자 마음속 어딘가 감춰두었던 욕망도

자신만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죄악과 위선도

엑스레이에 찍힌 것처럼 뼈째 드러났다

들어간다 해도 너무 어두워 돌아 나올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성질이 급한 누군가는 포클레인을 몰고 와 담장과 지붕을 부수고

벽을 허물어뜨렸지만 소용없었다 양파처럼

까도까도 보다 더 큰 별채가 버티고 있었다

그에 대한 의혹과 의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는 별채 속의 별채 속으로

몇 광년 거리의 별처럼 점점 멀어져 갔다

 

          ⸻격월간 시사사201811-12월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