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나라 없는 사람 / 장혜령

문근영 2019. 2. 11. 10:05

나라 없는 사람

 

   장혜령

 

 

 

잊지 못합니다

흰 개의 그 마지막 눈빛을

트럭에 태워지던 날, 자신의 운명을 물으며

찡긋거리던 검은 코의 물기를

 

어려서 알았지요

우리는 자라서, 어딘가에 실려 하염없이 떠나게 된다는 것을

곡마단 남자들을 보며 배웠지요, 그 여름

소독차가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면

짖는 법을 잊은 개처럼

뒤를 쫓으며

 

연기 속에서 많은 친구를 잃었지요

돌아보지 않고 맹렬히 뛰다가,

내려치던 파이프 소리

벽돌, 유리병, 또 무언가가 차례로 부서지는 무서운 소리를 들으며

붙잡히지 않기 위해

 

살았지요 집이 없는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고백하던 그 손, 잊지 못합니다

부모가 없는

동시에 여러 나라에서 온 슬픔

 

그래서 사랑했습니까

손가락과 손가락을 머뭇거리게 하던 모든

깨질 것 같은 두려움, 석류처럼

여기 있습니까

 

다락방의 더러운 침대에서

물이 떨어지는 지붕을 바라보면서

저녁에 먹을 마지막 빵 한 조각을 아끼고 누워 있을 때

사랑은 멀고

슬픔은 아교처럼 엉겨왔지요

 

살고 있나요

신발만 남고

불타버린 현관 앞에서

 

그래요 나는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죠

 

-계간 시와 사상2018년 가을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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