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식(月蝕)
김명수
달 그늘에 감긴
비인 마을의 잠
사나이 하나가 지나갔다
붉게 물들어
발자국 성큼
성큼
남겨 놓은 채
개는 다시 짖지 않았다
목이 쉬어 짖어대던
외로운 개
그 뒤로 누님은
말이 없었다
달이
커다랗게
불끈 솟은 달이
슬슬 마을을 가려주던 저녁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시집『월식』(민음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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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
이성선
하늘 속으로 달이
월식하러 들어간다
빤스까지 벗고 커튼 내리고
꼭 그짓하러
침실로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내가 따라 들어간다
하늘이여,
오늘 밤은 깜깜한 저 방에서
그녀와 한몸이 되어
한번 깜깜하게 지워지고 돌아와서
당신의 벼락을 맞겠습니다
-소월시문학작품집『백련사 동백숲길에서』(문학사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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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
강연호
오랜 세월 헤매 다녔지요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대 찾아
부르튼 생애가 그믐인 듯 저물었지요
누가 그대 가려 놓았는지 야속해서
허구한 날 투정만 늘었답니다
상처는 늘 혼자 처매어야 했기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흐느낌
내가 우는 울음인 줄 알았구요
어찌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대 가린 건 바로 내 그림자였다니요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울고 있었다니요
-안도현 엮음『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가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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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
남진우
달을 따기 위해
지붕에 사다리를 걸쳐 놓고 올라간 아이와
달을 건지기 위해
두레박을 타고 우물 속으로 내려간 아이가
이 밤
저 달에서 만나 서로 손을 맞잡는다
우물에 떠 있는 달 속으로
지금 막 올라간 아이가
달을 따 들고
지붕 밑으로 내려온다
-시집『새벽 세시의 사자 한마리』(문학과지성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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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
김산
촉촉하게 달뜬 그녀의 몸에 나를 대자 스르르 미끄러졌습니다. 나의 첨단이 그녀의 둥근
틈 앞에서 잠시 망설였지만 말입니다. 그녀가 열었는지 내가 밀고 들어갔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사르르 눈앞이 캄캄해진 것을 보면 붙어먹는다는 거,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최초의 일이 다 그렇습니다. 그 다음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만,
-월간『문학마당』(2008,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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