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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법과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 / 김정남

문근영 2018. 12. 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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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

                                                                           김 정 남(언론인)

흰 토끼 한 마리가 허둥지둥 들판을 뛰어가는 것을 보고 캥거루가 말했다. “토끼야, 무엇 때문에 그렇게 뛰어가니?” “나를 매카시 의원이 쫓고 있거든…” “그러나 너는 빨갱이가 아닌데 무엇이 걱정이지?” “글쎄, 난 빨갱이가 아닌데, 그것을 무엇으로도 입증할 수가 없단 말이야.”

이는 1950년대 매카시 선풍이 불고 있을 때 미국에서 유행하던 삽화다. 매카시가 아무 근거도 없이 빨갱이로 몰고, 몰린 당사자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내지 못하면 그는 영락없이 빨갱이로 몰려 공직에서 추방, 매장당할 수 밖에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보인다 하더라고 매카시 쪽은 “아니면 말고”하면 그만이었다.

공안검찰의 매카시적 수법과 사법살인

미국에서는 매카시 선풍이 한때 휩쓸다 지나갔지만, 매카시 수법은 대한민국 사법사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맹위를 떨쳤다. 얼마 전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이 수법이었다. 무죄를, 그것도 국민 앞에 당당한 무죄를 입증해 보이는 것이 구차해, 그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이른바 긴조시대·국보시대에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을 반국가사범이나 빨갱이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바로 이 수법이었다.

인혁당 사건을 비롯하여 그때 관련된 사람들이 재심을 통하여 무죄를 선고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를 선고 받는 건 수 보다는, 재심을 청구하지 못한 채 묻혀있는 사건이 수 백배는 될 것이다. 무죄를 선고 받은 사람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줘야 하는 돈도 이미 천 억 원 대에 이르고 있다. 재심청구가 봇물을 이룰 것이고 보면 머지않아 배상액은 가히 천문학적 숫자에 달할 것이다.

이들 사건 거의 전부가 지난날 공안검찰의 매카시적 수법에 의해 처리된 사건이었다. 국가가 배상해야 할 막대한 금액은 그때 그렇게 몰고 또 판단한 검사나 판사가 물어내거나, 적어도 도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한 일이다. 그 사건들을 맡았던 검사나 판사들이 지금 엄연히 생존해 있지만,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도 잘못했다고 국민 앞에 고백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작년 10월, 대한민국 검찰 창설 6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의 검찰총장이 했다는 말은 과연 그들에게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는지를 의심케 했다. 뭐 “검찰은 역사의 고비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데 앞장섰으며, 격변의 시대에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켜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국법질서의 확립이나 사회정의의 실현에 치우친 나머지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는 소임에 더 충실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다” 고? 웃기지 말라.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말이다.

법과 정의완 거리가 먼 '불멸의 신성가족'

1974년 7월, 민청학련 사건 1심 결심공판에서 강신옥은 “이 사건을 맡게 된 뒤 나는 법은 정치나 권력의 시녀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검찰이 애국학생들을 내란죄,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몰아쳐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하는 것은 사법살인 행위이다. … 나 자신은 직업상 변호인석에 앉아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하여 피고인석에 앉아 있겠다.”고 말하여 변호사의 몸으로 감옥에 갇혔다.

“지난 번에 낙마한 검찰총장 후보의 인사청문회에서 그에게 수 억 원씩 뒷돈을 대는 스폰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사와 판사는 직제나 급여에 있어 공무원 사회에서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변호사가 되면 또 얼마나 돈을 알뜰하게 잘 챙기는가? 이용훈 대법원장은 5년 동안 변호사로서 472건을 수임하여 60억 원의 수임료를 받았고, 박시환 대법관은 변호사 생활 22개월 동안에 19억 원을 벌었다.”(김두식,『불멸의 신성가족』에서)

그 옛날 서울 법대 구내에는 작은 ‘정의의 종’ 구조물이 있었고, 거기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1973년 10월,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자신들을 가르친 교수가 불법구금 상황하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도 그의 제자나 동료가 최교수의 죽음에 항의했다는 얘기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 억울한 죽음을 폭로하고 나선 것은 엉뚱하게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었다.

최근 들어 법치를 부르짖는 소리가 어쩐지 심상치 않다. 법치는 정의에 바탕하고 공동선을 지향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약자가 권리를 침해 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을 처벌했다. 일련의 삼성 사건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법과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이여! 법과 정의를 감히 말하려 하거든, 먼저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이 진정 정의로운 사람임을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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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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