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이야 인간의 본능에서 오는 일이지 작위적으로 애써서 일어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야 그래도 조금은 작위가 개재되지만, 부모의 정이야 지어서는 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외롭고 괴로운 먼먼 귀양지에서 고향에 두고 온 아들을 생각하던 다산의 정은 오늘 우리의 가슴에도 생생하게 공감되는 애틋한 마음이었습니다. 1801년 초봄, 신유옥사가 일어나 다산은 형제들과 함께 감옥에 갇히고, 국청이 열려 재판을 받은 뒤 저 먼먼 경상도 포항 곁의 장기라는 고을로 유배살이를 떠났습니다. 귀양살이를 시작한 얼마 뒤 아들이 아버지에게 밤[栗] 한봉다리를 보내왔나 봅니다. 이때 지은 시가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해줍니다.
우리 아이가 도연명의 아들보다야 나은가 봐 頗勝淵明子 아비에게 밤까지 보내주었네 能將栗寄翁 생각해보면 한 주머니 하찮은 것이지만 一囊分
細 천리 밖의 배고픔을 위로 하려는 뜻이겠지 千里慰飢窮 아비 생각 잊지 않은 그 마음이 사랑스럽고 眷係憐心曲 싸맬 때의 그 손놀림이 눈에 어른거리네 封緘憶手功 입에 넣으려니 되레 마음에 걸려 欲嘗還不樂 하염없이 먼 하늘만 바라보네
視長空 (穉子寄栗至)
중국 진(晉)나라 때의 도연명은 아홉살 먹은 아들이 책 읽기는 좋아하지 않고 배와 밤만 즐겨 찾는다고 아들을 꾸짖는 시를 지은 바 있습니다. 이것과 비교하여 밤을 먹지 않고 아버지에게 보내준 아들의 마음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지은 시입니다.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게 표현하는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요. 하찮은 밤 한봉다리가 그렇게 크게 아버지의 심금을 울렸을까요. 아이들이 즐겨 먹어야 할 밤을 어른인 아버지가 먹어야 할 처지가 그처럼 가슴 아파서 하늘만 쳐다보던 다산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시라고 여겨집니다.
인간은 진정성을 지닐 때만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서로의 감정이 이해되어 감정이입의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다산의 시는 진정성의 깊은 내면도 마음을 울리지만, 탁월한 묘사력은 더욱 독자들의 가슴을 떨리게 합니다. 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음도 고맙지만, 정성스럽게 밤을 포장하던 손놀림이 눈에 어른거린다는 표현은 더욱 마음을 사로잡게 해줍니다. 세상의 부정부패에 분노하던 시도 좋지만 이렇게 간결하게 심정을 묘사한 시들이 더욱 깊은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