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병 욱(언론인)
초년기자 시절, 화재현장에서 취재 중 주민들의 박수를 받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1970년대 중반의 일이다. 영등포 변두리 한 악기공장에서 불이 났는데 신문사 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하자 공장 근로자와 인근 주민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불길은 금방이라도 공장 옆 판자촌으로 옮겨 붙을 기세였다. 그런데도 소방도로가 정비돼 있지 않아 큰 소방차는 아예 공장에 접근도 못하고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먼 데서 끌어온 호스로, 또 주민들은 버킷이나 바가지 등으로 물을 날라 연신 뿌려대는 중이었다. 이래서야 언제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안타까운 상황. 사람들이 박수를 칠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긴박한 상황, 박수와 취재협조로 환영받은 기자 난데없는 박수에 기자가 어색해 하며 차에서 내리자 이번엔 사람들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제각기 현장상황을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기자가 둘러보니 그런 주민들 주변엔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도 끼여 있는 것 아닌가. 아마 그 기자들에겐 주민들이 상황설명을 해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그랬을까.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는 제쳐두고 한참 늦게야 현장에 온 특정 신문사 기자에게 몰려들어 박수까지 치며 취재에 협조하려고 애쓰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궁금했지만 당장 취재가 급했지 그걸 물어볼 형편은 아니었다.
신문사에 돌아와 그 일을 설명하자 사회부장이 간단하게 답을 내놓았다. “우리 신문을 믿기 때문이야.” 한 선배기자는 거기 덧붙여 “우리가 시민 편에서 기사를 쓰는 걸 알고 박수친 거야”라고 했다. 당시는 유신정권의 긴급조치가 언론에 단단히 재갈을 물렸던 시절. 써야 마땅한데도 못 쓰는 기사, 아예 보도금지 딱지가 붙거나 몇 단 이상은 쓸 수 없게 조치한 기사들이 부지기수였다. 그처럼 보도가 부실한데도 우리 신문을 믿는다니. 시민 편에서 기사를 쓴 걸 믿는다니. 초년 기자로선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때 주민들의 박수와 배타적 취재협조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기자가 소속했던 회사가 다른 언론사에 비해 독자들의 신뢰를 훨씬 많이 받고 있었고 꼭 써야할 기사를 못쓰는 것도 비난하기보다 동정했다는 걸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분명히 정부나 있는 자의 편이 아닌 없는 사람, 서민의 편에서 기사를 쓰려 애썼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판자촌 주민들도 믿음을 갖고 있는 신문사의 기자가 오자 반가운 마음에서, 또 판자촌 서민인 자기들 편에서 기사를 써달라는 호소의 심정으로 박수를 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정 시민의 편에선 신문은? 제 논에 물대기 해석인지 모르나 당시 기자가 속한 신문사에는 잠시 앉아 쉴 새도 없이 시민들의 제보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어떤 때는 신문에 오자 탈자가 생기거나 띄어쓰기를 잘못했는데도 일부러 뭔가를 암시하려고 그런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해오기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백지에 제호만 찍어도 다른 신문보다 몇 배는 더 나갈 거라는 등 독자의 끝없는 신뢰를 바탕 삼아 신문을 만들었다.
아침마다 오는 신문들을 보며 지금 시민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드는 신문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본다. 특정 정파나 이념에 편승한 신문, 정부나 광고주의 입장에 충실한 신문, 되지도 않는 훈계로 시민들을 역겹게 하는 신문 등은 금방 가려낼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시민의 편으로, 시민의 아픈 데를 감싸주며 억울한 곳을 밝혀주는 신문은 “이거다”며 찍기가 쉽지 않다. 30년 기자를 하고 신문사를 떠난 지 5년이 넘었지만 박수 받는 기자 이미지는 머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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