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대하여

[스크랩] 글의 독창성

문근영 2011. 7. 7. 08:24



글로 쓰고자 하는 것을 정하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낸 다음에는 내용 검토가 꼭 필요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글의 구조를 만들어도 내용이 온전하지 않다면 그 체계는 모래 위 집처럼 허물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또 표현만 요란하고 내용이 없는 글의 구조는 훌륭하게 짜여질 수 없다. 그러기에 좋은 글을 짓기 위해서는 내용을 살펴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때 독창성이 가장 중요하다. 글의 소재가 이미 낡은, 누구나 아는 내용이거나 혹은 굳어진 사실에 매달려 있다면 독자는 흥미를 잃는다. 예를 들어 <봄바람>이라는 글을 '봄바람은 따뜻하고 새싹을 돋아나게 하고 눈을 녹게 한다.'고 평범하게 쓴다면 감동이 있겠는가? 봄바람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보다 창조적인 세계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독창성은 스스로 체험한 것이나 고안한 것이 될 때 발휘된다. 수영장에서 물을 먹은 경험이 있다고 하자. 흔히 수영장은 안전한 곳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경험은 일반의 예상 밖의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가 흥미를 끌어 독창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될 것이다.

시각 또한 독창적이어야 한다. 독특한 시각은 독자에게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가로수의 나뭇잎이 넓어서 햇볕을 가려 준다고 한다면 평범한 이야기지만, 가로수의 나뭇잎이 마치 원두막의 지붕처럼 햇볕을 가려 준다고 하면 좀 더 독창적이다.

이메일로 보내온 독자 권순미 씨의 글을 '독창성'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어린 날 외할머니 집을 찾아갔던 경험을 그렸다.

나는 외할머니 집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여름이 되면, 마을의 입구에서 보여지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죽죽 뻗은 미루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던 매미들의 울음소리, 마을입구로 들어서는 다리 밑에는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다리를 건너, 가느다란 오솔길 양옆으로는 넓은 밭이랑 논들이 펼쳐져 있었다. 할머니네 집의 입구에는 진초록의 감나무가 마당을 지키며, 문지기 역할을 제법 해내고 있었다. 대문을 중심으로 하여, 약간 비켜진 왼쪽 가장자리에는 향나무랑 장미꽃 넝쿨이 한데 어우러져 피어 있었고, 그 밑에는 자그마한 맨드라미랑 깨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양지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특히, 깨꽃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꽃을 따서, 그 끝을 쪽쪽 빨다 보면 달작지근한 꿀물이 나와서, 그것을 빨아먹는 재미가 꽤 쏠쏠했기 때문이었다. 다리 밑 개울은 우리 꼬맹이들에겐 여름나기에 꽤 좋은 놀이터였다. 남자 아이들은 주로, 미꾸라지나, 송사리보다는 조금 큰 물고기-그것을 우리 마을 아이들은 중타리라 불렀다- 를 잡았고,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올챙이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중략)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농촌 마을의 정경을 떠올리게 하는 힘 있는 글이다. 표현에서는 비록 문장의 연결고리는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나 이야기의 진실성이 있었다. 아쉬운 것은 외할머니 댁의 인상과 그 인상을 보다 자기답게 표현하는 게 약해서 아름다운 이야기의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깨꽃을 빨아먹은 것은 그만의 독특한 체험인데 평범하게 그려져 조금 아쉬웠다.

박동규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1939년 경북 월성군에서 박목월 시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평론가이자, 시 전문지《심상》의 편집고문,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수필집과 문장론집 등 서른 권여의 저서가 있다.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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