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대하여

[스크랩] 최동호시인 한국 시 경향에 쓴소리

문근영 2011. 1. 8. 10:43

최동호시인 한국 시 경향에 쓴소리
[세계일보] 2011년 01월 07일(금) 오후 09:24   가| 이메일| 프린트
“난삽하고 장황하며 소통이 없는 詩 만연 아쉬워”

[세계일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다변적이고 소모적인 시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소비경제 시대의 시적 양산이라고 하더라도 한 단계 극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방만한 시들의 유행을 그대로 방관하는 것은 시인 개개인은 물론 우리 시단을 위해서도 반성적 논의가 요구되는 문제입니다.”

◇소통 부재의 한국 시에 대해 질타한 최동호 시인. 그는 “소통 부재의 책임이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으로 강변하는 것 같다”면서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서로가 일방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동호(63·고려대 국문과 교수) 시인이 ‘장황하고 난삽한’ 이즈음의 한국 시 경향에 대해 회초리를 들고 나섰다. 그가 계간문예지 ‘유심’ 겨울호에 발표한 ‘트위터 시대 극서정시의 길’이 정초 문단의 화제다. 그는 선명하면서도 그리 길지 않은 이 글을 통해 이즈음 한국 시, 특히 젊은 층의 시작 경향이 이른바 ‘미래파’를 통과하면서 서정시의 근원을 훼손하고 있는 현상을 직격했다. 그는 “젊은 시인들을 부정하거나 격하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는 전제 아래 “전망 없는 정체와 혼돈이 우리 시단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라고 피력했다.

“모든 시의 근원은 서정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정시는 그 근원으로 돌아갈 때 힘이 생기지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출발점이 바로 근원입니다. 모든 인간이 정서적인 것을 내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가 성립하고, 그것을 거느릴 수 있을 때 시가 성립하는 겁니다.”

최동호씨는 이즈음 한국 서정시의 문제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장황하고, 난삽할 뿐 아니라, 소통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한 젊은 시인은 16쪽에 이르는 시를 발표한 바 있다”면서 “길다고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현상에 편승하여 작품의 밀도는 물론 일관성도 통일성도 없는 시들이 마치 유행처럼 수많은 문학지들에 통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씨는 이처럼 ‘장황한’ 시적 경향과 함께 ‘난삽한’ 시의 문제를 더불어 지적했다.

“장황한 시들이 문단에 유행하는 배면에는 난삽한 시들의 지적 과장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우매한 독자들은 상대하지 않겠다는 식의 지적 우월감을 과시하려고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일종의 암호와 비슷하게 소수의 독자들에게만 열려 있는 소통 부재의 언어들은 시를 사랑하려는 국민의 공감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줄 정도입니다.”

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극서정시(極抒情詩)’를 제시하고 나섰다. 극서정시란 극도로 정제된 단형의 소통 가능한 서정시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 행 또는 삼사 행의 서정시를 이상적인 형태로 지향한다는 것이다.

황동규 시인이 1980년대 후반부터 드라마에 방점을 찍은 ‘극(劇)’서정시와는 다른 개념으로, 그가 주창하는 ‘극서정시’는 극적인 요소마저 압축시킨 서정시라는 설명이다. 또한 역사적 배경과 전통이 다르고 언어적 발상이 다른 일본의 하이쿠를 모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도 커다란 잘못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난삽하고 장황하며 소통 부재의 시들이 가지는 몽환적 속박으로부터 우리 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극서정시의 길”이라면서 “그동안 시를 향유하고 싶어 했던 많은 독자들 앞에 장애물처럼 가로 놓여 있던 소통 부재의 둑을 무너뜨리고 간결하고 경쾌하며 독자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시인과 비평가가 해야 할 시대적 책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금년 신춘문예 시들이 서정시 본류로 돌아오는 느낌”이라면서 “심사자들이나 응모자들 모두 시적 완성도를 지향하는 소통 가능한 시를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가 지목한 모범적인 올 신춘문예 서정시들은 모두 그의 제자(고려대 국문과 대학원)들이 응모해 당선된 작품(문화일보 ‘이만호 할머니의 눈썹문신’, 조선일보 ‘유빙’)들이었다. 그렇다고 지적했더니 그는 “나는 말과 실천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며 웃었다. 2월에는 ‘극서정시’를 담보할 모범시집으로 조정권, 이하석과 함께 ‘서정시학 서정시’ 시리즈를 나란히 선보일 예정이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출처 : 한국문단, (사)녹색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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