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대하여

골목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쓴 동시_이준관

문근영 2010. 4. 18. 10:37

골목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쓴 동시

                             -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이 준 관



동시집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의 배경은 내가 살던 아파트 가까이에 있는 고척동 골목길이다. 이름도 촌스러운 ‘태양 이발관’이 있고 개미구멍처럼 조그만 구멍가게와 허름한 쌀집이 있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좁은 골목길이 동시집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가 태어난 곳이다.

처음 동시를 썼을 땐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자연을 소재로 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내가 늘 보고 지낸 것은 자연이었다. 그래서 자연을 소재로 시를 쓰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서울로 직장을 옮겼는데, 내 동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쓴 동시에 자연 풍경만 있지, 정작 동시의 주인이어야 할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의 생각이나 느낌, 정서와 감각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자!


동시집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를 쓸 무렵 내가 고민하며 내린 결론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자!’였다. 요즘 아이들의 생활과 정서와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 생활 속으로 들어가 아이들의 생각과 생활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친숙한 언어로 풀어 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문단 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직장에서 퇴근하면 곧장 내가 살던 아파트 가까이에 있는 고척동 골목길을 찾아갔다. 나이든 어른으로서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처음엔 쑥스럽고 어색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달랐다. 무슨 일이든 이해관계를 따지고 경계심을 갖는 어른들과 달리 씽긋 한 번 웃어 주면 금세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놀이터에 가면 “아찌!”라고 하며 내 팔에 매달렸다. 지금 돌아보면 동시를 쓰겠다고 아이들을 찾아갔지만 정작 동시 쓰는 일보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더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나는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동시집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는 내가 고척동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채송화꽃처럼 조그만 아이로 돌아가 세상을 바라보고 쓴 시들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동시를 쓰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시집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를 쓸 무렵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아이들이 쉽고 친근감 있게 받아들이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생각과 표현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무진 애를 썼다. 선배시인들은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역시 동시도 ‘시’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적 표현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시적 표현에 치중하다 보니 아이들이 시를 이해하기 힘든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래서 ‘동심과 시’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데 품을 들였다. 문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아이들의 평가에 맡긴다는 심정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시를 썼다. 동시집이 나오자 문단 일각에서는 동시가 가볍다느니 하며 좋지 않은 평도 있었지만, 어린이 독자를 향한 내 진정성이 인정을 받아 소천아동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농촌에서 일하는 아이들, 탄광촌 아이들, 산골벽지 학교 아이들과 같은 특별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어야만 아이들의 진정한 삶이 담겨 있는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보통 아이들의 삶 속에 시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골목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보통 아이들의 일상을 무겁지 않게 다루었다. 동시집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를 통하여 탄광촌이나 산골 벽지에 살며 특별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아닌,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보통 아이들의 삶과 생각 속에 시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공감하는 ‘표현’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리듬’



‘남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표현하기’를 동시 쓰기의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무슨 생각이나 표현이 쉽게 떠오르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혹시 남의 생각이나 표현을 표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을 써 놓고는 혹시 비슷한 생각이나 표현이 없는지 꼼꼼히 다른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곤 한다. 이렇게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신선하고 참신한 비유를 찾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시의 매력은 참신하고 경이로운 비유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신한 비유를 찾기 위해서, 먼저 어떤 시적 대상을 보고 그 모습이  무엇을 닮았는가를 생각해 본다. 이 때 되도록이면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사물에서 닮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참새는 아이들이 쓰는 털모자의 방울 같다. 왜냐하면 참새는 털모자의 방울처럼 작고 귀엽고 달랑거리니까.” 하는 식의 표현이다. 더 하나 예를 들면 “무지개는 내가 아끼는 말굽자석 같다. 왜냐하면 무지개는 말굽자석처럼 굽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말굽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듯 무지개 또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끌어당기니까.” 이런 표현으로 서로 이질적인 두 사물에서 닮은 점을 찾다 보면 엉뚱하면서도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아주 적절한 비유를 찾게 된다. 동시집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쓰였으면서도 유치하지 않고 시적 신선함을 잃지 않은 것은 참신한 비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동시를 쓰면서 참신한 비유와 더불어 세심한 정성을 쏟는 부분이 바로 리듬이다. 아이들은 반복적인 리듬을 참 좋아한다.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똑같은 동작과 노래를 반복하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고 흥겨워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리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동시를 쓰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리듬을 살려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슬비는 이슬비여서
  이슬처럼 예쁘게 맺히려고
  이슬이슬 내려오지
  강아지풀잎 위에.


동시 『비의 노래』의 일부이다. 이 동시를 쓸 때 ‘이슬비’라는 말이 예뻐 이 말을 살려, 리듬감 있게 표현했다. 동시를 쓸 때 방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걸으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그렇게 떠오른 시상을 입 속으로 흥얼거리며 말을 갈고 다듬어서, 말과 리듬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 노트에 옮겨 적는다. “말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생생하게 소리 나게 하라.” 이것은 내가 동시를 쓸 때 늘 유념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동시를 쓸 때 말과 소리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 리듬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리듬과 함께 시 속 정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도록 이미지에도 신경을 쓴다. 좋은 시는 그 시를 읽을 때 마음과 머릿속에 뚜렷하게 모습과 정경이 그림처럼 떠올라야 한다. 시의 이미지는 사물의 인상을 생생하고 선명하게 해 주고 시에 감각성과 구체성, 신선미를 높여 준다. 그러나 이미지에 너무 치중하면 한 폭의 그림 같은 시는 되지만, 생동감은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리듬’과 ‘이미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내가 강아지처럼 가앙가앙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마당이 내 집이었지.
  내가 송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녔을 때
  푸른 들판이 내 집이었지.


동시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의 일부이다. 이 동시를 쓸 때 리듬을 살리는 한편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려고 했다. 먼저 리듬을 살리려고 반복적인 구조를 사용했고 ‘가앙가앙’ ‘겅중겅중’이라는 의태어를 사용했다. 특히, ‘가앙가앙’은 ‘강아지’와 ‘강강술래’의 어감 두 가지가 떠오르는 한편 리듬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꽃밭’ ‘마당’ ‘푸른 들판’ ‘파란 하늘’ 등 구체적인 시어는 감각적이고 색채적이며 생생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이들의 일상적인 삶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서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기도 했다. 『나 한 입만』이라는 동시는 한 아이가 솜사탕을 사서 길을 가는데 아이들이 “나 한 입만.” 달라고 조르는 것을 보고 쓴 시다. 그리고 선생님이 친구들을 괴롭히면 눈을 감고 서 있으라는 벌을 준다는 말을 듣고 쓴 동시가 ?무서운 벌?이다. 동시 ?달팽이처럼 조그만 아이?에 나오는 “얘, 그러지 마./ 달팽이가 다 듣는단 말이야.”도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 보면, 그 말 속엔 어떤 시적인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골목길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아이들로부터 배운 것이 참 많다. 신선한 경이감, 끝없는 호기심,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생동감 모두를 아이들로부터 배웠다. 낡은 것, 흔한 것, 볼품 없는 것들도 새롭고 경이로운 것으로 만들어 내는 아이들만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입에서 절로 휘파람이 나오는
즐거운 오늘

안녕! 즐겁게 만날 친구도 많고
야호! 신나게 할 일도 많은

나는 오늘이 좋아.


동시 『오늘』의 일부이다. 이 동시에서도 표현했듯이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고 신나는 일로 가득 차 있다. ‘아이들 속에 시가 있다!’ 이것이 동시집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를 쓰면서 깨달은 것이다. 아이들로부터 그런 신선함과 생동감을 받아들여 쓴 시, 하나하나가 모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동시가 잘 안 써지면 다시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로부터 새로운 시의 에너지를 충전 받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