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대하여

착각이 낳은 아름다운 동시_최룡관

문근영 2010. 4. 16. 11:24

착각이 낳은 아름다운 동시

최룡관

요즘 한국의 아동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철호 시인의 동시집 《꽃씨의 이야기》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읽어보노라니 “엄마 기차가 기여가는데 저렇게 빠른데 서서 달려가면 비행기보다 더 빠르겠지요” 라고 종알대는 어린 아이의 천진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기여가는 기차, 서서 가는 기차, 비행기보다 더 빠른 기차...이러한 어린이 언어들은 틀리는 것 같으면서도 웃음보를 터뜨리는 아주 자연스러운 언어들이다. 이런 언어는 아이의 총명하고 영특한 기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언어들은 어른들이 듣기에는 착각인 것 같지만 아이들의 사유체계나 언어세계에서는 매우 당당한 언어들로 된다. 김철호 시인는 《꽃씨의 이야기》에서 이런 동심의 세계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측면으로 착각을 리용하여 아름다운 동시를 직조해 내고 있다.

시각적 착각

사람에게는 다섯가지 감각기관이 있는데 제일 다채롭고 풍부하게 감수하는 기관이 아마 눈일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채롭고 아름답고 혈육 같고 형제 같은 동화의 세계이다. 천진란만한 저학년 애들의 심미세계에 침잠한 김철호 시인은 아이들의 눈길로 사물을 관찰하면서 착각으로 동시를 창작하고 있다.

가지 없이도
노랗게 피고

뿌리 없이도
하얗게 핀다
-“나비”전문

한굽이 돌 때마다 집 한 채 짓는다
노란 나비 이사와 살라고
하얀 집 한 채
꿀벌이도 이사와 살라고
또 한 채 하얗게
이번에 잠자리네 새집을
하얗게 도-옹-글

울바자 따라 올라와 보니
파란 하늘 빵긋

이제 뭘 붙잡고 더 오르나
아직도 새집 더 지어야겠는데
-“나팔꽃” 전문

“나비”와 “나팔꽃” 두 동시를 옮겨보았다. 두편의 동시의 매력은 시각적 착각에 있다고 하겠다. 시인은 나비를 꽃으로 설정하였는데 노란 나비는 노란 꽃, 하얀 나비는 하얀 꽃이다. 꽃은 꽃인데 가지도 뿌리도 없는 곳에 피여난 꽃이다. 실은 시각적 착각에 의하여 노란 나비는 노란 꽃으로 다시 태여나고 하얀 나비는 하얀 꽃으로 다시 태여난다.
“나팔꽃”에서는 나팔꽃이 “집”으로 둔갑한다. 하얗고 동그란 집으로 . 그 집은 나비네 집이고 꿀벌이네 집이고 잠자리네 집이다. 울바자끝까지 다 올라온 나팔꽃은 “아직도 새집을 지어야겠는데” 하고 근심한다. 그렇다. 아직도 등에네 집이 없고 파리네 집이 없고 모기네 집이 없다. 또 메뚜기며 새들이며 반디불들이 집을 찾을 것이다.
현실 생활에서 나비를 꽃이라 하고 나팔꽃을 집이라 하면 통하지 않지만 동시에서는 스스럼 없이 통한다. 이것이 바로 이 시의 특권이며 매력인 것이다. 이러한 특권과 매력은 시각적인 착각으로 이룩된것이라고 하리라.

청각적 착각

시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고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하는것이라고 시인과 비평가들은 말하고 있다. 동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고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할 때만이 그 동시를 발견이 있다하고 생동하고 감화력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김완기씨는 “시를 쓰려면 귀는 청진기가 되어야 하고 눈은 현미경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동시를 쓰는 김철호 시인의 귀는 청진기가 되고 눈은 현미경이 되어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남이 보지 못하는 사물을 보아내고 있다.

급한 사연이 있어서
급히 떠난 개울물
바위에서 떨어지면서
산굽이를 에-돌며
개울 개울 개울 개울

빨간 단풍잎 편지 하나
급히 나르느라
남 다 자는 밤에도
그냥
개울 개울

개울이네 동네를 잊을가봐
개울 개울 주소를 외우며
쉴새 없이 가고 간다
개울 개울 개울...
-“개울물” 전문

미워 미워 하니
미워 미워 한다
나빠 나빠 하니
나빠 나빠 한다

한마디도 지려하지 않고
콕콕 쏘아대는
심술꾸러기
내 동생 같구나
-“메아리” 전문

일상적인 경우에 우리들은 개울물을 도란도란, 돌돌 혹은 졸졸 소리내며 흐른다고 한다. 그런데 김철호 시인은 개울개울 흐른다고 한다.참 재미 있는 새로운 발상이다. 의성어를 새롭게 다듬어 본 자세가 멋지다. 개울물이 개울개울 급하게 쉬지 않고 흐르는 것은 “단풍잎 편지”를 나르는 개울물이 개울이네 동네로 보내는 편지주소를 잊을가봐개울개울 외우며 가는 중얼거림이란다. 어찌 보면 엉터리 같지만 아이들의 생각으로 말하면 그럴법도 하다. 이런 아이들의 착각을 구사하여 낸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할수 없다.
김철호 시인은 동심에 발을 튼튼히 붙이고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쳐서 깊은 우물에서 우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어내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물을 드레박으로 길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메아리”도 그렇다.사람의 소리를 받아외우는 메아리에서 심술이 많은 동생을 떠올리고 있다. 과시 동심에 푸욱 젖은 시인의 발상이라겠다.
김철호 시인은 청각적 착각을 시각화하는데 성공하고 있으며 이질적인 사물의 동일성을 노리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능란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겠다.

동적 착각

세상의 사물의 움직임을 새로운 눈길로 고찰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동시를 재미있게 쓰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김철호 시인은 사물의 움직임을 틀리게 보면서 아름다운 동시를 쓰고 있다. 시인의 이런 시각적 착각이 어떻게 아름다운 동시가 되고있는가를 한번 살펴보는 것은 김철호 시인의 동시를 흠상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받으리라고 생각된다.
사물 움직임의 다양성은 늘 김시인의 눈길을 끌어가고 있으며 시인의 흥분점을 마련하고 있다. 김시인은 흥미진진하게 사물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꿀벌이 꽃에서 꿀을 캐듯이 움직임에서 시를 캐내고 있다. 시인이 동적 착각으로 쓴 시는 꿀벌이 꽃속에 들어갔다가 묻혀내온 향기인 것이 아니라 빚어내온 달콤한 꿀이다.

봄바람은
하늘물 길어다
산에 산에
푸른 물 들인다

봄바람은
하늘 물 길어다
들에 들에
푸른 물 들인다
-“봄바람” 전문

함박눈은
솜처럼
펑펑
하늘나라
목화밭
풍년들었나

싸락눈은
쌀처럼
솔솔
하늘 나라
정미소
구멍 뚫렸나
-“눈.3” 전문

상기한 두편 동시에는 공동성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봄바람과 눈의 움직임에 대한 착각이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산과 들이 푸르러지게 마련인데 김시인은 그 원인을 봄바람이 하늘물을 길어다 산마다에 푸른 물을 들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들마다에 푸른 물을 들이기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함박눈이 내리는 것은 하늘나라에 목화풍년이 들었는데 목화송이들이 땅에 떨어진다고 착각하고 싸락눈이 내리는 것은 하늘의 정미소에서 찧은 쌀이 정미소 구멍을 통하여 솔솔 새여나온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착각은 미운 착각으로 안겨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고운 것으로 안겨온다는 것이다. 환상적이고 유희같은 이런 착각에 의하여 씌여진 동시의 매력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한국의 저명한 시인 김춘수는 《시의 리해와 작법》이라는 저서에서 “상상은 리상적인 짝을 찾아주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김철호 시인은 《꽃씨의 이야기》에서 착각을 리용하여 한 사물을 다른 사물로 이동시키면서 깜찍하게 리상적인 짝을 찾아서 동시를 쓰고 있다.
이외에도 미각적인 착각을 리용하여 쓴 동시가 있는데 “채소의 성미” 한편뿐이여서 분석하지 않는다.《꽃씨의 이야기》의 주선률은 “작은 꿈”인 것 같다. “지붕”도 “벽”도 “문”도 없는 집을 짓고 모든 사물이 단란하게 살아가고저 한다. 이 주선률이 동시의 편편마다에서 숨쉬고 있어 시인의 착각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승화되였는지도 모른다.

 

발췌 : http://cafe.daum.net/pen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