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석이石耳 / 정용기 석이石耳 정용기 봄밤, 소쩍새가 내내 운다. 몸져누운 절벽 하나가 밤을 새워 앓는다. 절벽도 귀가 있어서 구름 흘러가는 흔적에도 애가 달고 천둥 번개에도 소스라쳐 떨쳐 달아나고 싶고 암팡진 여자를 보면 따라나서고 싶어 안달이지만, 머나먼 광년을 달려온 별빛이 조곤..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좋은 言語 / 신동엽 좋은 言語 신동엽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 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고 기다려 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으로 머리로 속속들이 구비돌아 적셔 보세요. 허잘 것 없는 일로 지난 날 言語들..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고인돌 / 조재학 고인돌 조재학 그들이 암벽의 각을 떠서 주검을 덮었다 죽음의 힘으로 수천 년을 가고 있다 너는 시간을 벗어나 가고 나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돌에 갇혔다 수천의 백조가 날아왔다고 하는데 너는 보았는가 <현상> 2016년 4월 창간호.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눈뜬장님 / 오탁번 눈뜬장님 오탁번 연애할 때는 예쁜 것만 보였다 결혼한 뒤에는 예쁜 것 미운 것 반반씩 보였다 10년 20년이 되니 예쁜 것은 잘 안 보였다 30년 40년이 지나니 미운 것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눈뜬장님이 됐다 아내는 해가 갈수록 눈이 점점 밝아지나 보다 지난날이 빤히 보이는지 몇십 년 전 ..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죽방렴멸치 / 남상진 죽방렴멸치 남상진 때로는 구부러진 그의 등에다 시위를 걸고 싶을 때가 있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눈동자는 표적을 잃은 지 오래 골목은 출구도 없는 방안을 따라 이어졌다 누구처럼 막막한 놈들과 마주쳤을 때 한 번쯤 발사할 수 있는 먹물 한 줌 담아내지 못한 학벌 출구를 봉쇄당했을 ..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눈물꽃 / 김순일 눈물꽃 김순일 초원에서 푸른 노래를 먹고 뛰놀던 말의 혀가 보이지 않네 말랑말랑한 파아란 말, 풀꽃들의 노래가 얼음벽에 갇혀 있네 얼음송곳 같은 말의 점령군이 섬의 요새에 높이 높이 성을 둘러치고 제 입에 맞지 않으면 하늘 말도 퇴박이네 새들이 비척비척 노래의 날개가 부러진 ..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땀방울의 노래 / 신달자 땀방울의 노래 신달자 땀방울 하나를 따라간다 한 사내의 이마 위에 맺힌 땀방울이 턱 끝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내 긴장은 몇 천개의 물방울로 떨어지고 그 땀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은둔의 야성이 드러누운 의지를 이끌고 와와와 세상 밖으로 뒤쳐나와 순간 발을 멈추는 이 장면들 영상..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녹슨펌프 녹슨펌프 / 권영준 한 옥집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녹슨 펌프, 저 녹슨 물건에도 한 때는 뜨거운 피가 흘러 여인의 가랑이를 팽팽하게 밀치고 들어가 찬물을 길어 올리던 순간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단단한 기둥을 둥글게 말아 쥐고 차디찬 정수를 길어 올리던 그 날, 뜨겁던 사랑은 천 ..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슬하/유홍준 슬하/유홍준 고인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고인의 슬하에는 고인이 있나 저녁이 있나 저녁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저 외로운 지붕의 슬하에는 말더듬이가 있나 절름발이가 있나 저 어미새의 슬하에는 수컷이 있나 암컷이 있나 가만히 돌을 두드리며 묻는 밤이여 가만히 차가운 쇠붙이.. 좋은시 2019.01.19
[스크랩] 파문 / 이은봉 파문 이은봉 애초에 돌을 던지지 말아야 했다 돌에 맞은 호수는 이내 파문을 일으켰다 애써 마음 가다듬고 있는 호수를 향해 돌을 던진 것 자체가 문제였다 파문은 둥근 물결도 품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파도도 품고 있었다 파도는 세상을 떠도는 한 자루 칼! 칼을 품고 있는 파문이 문제.. 좋은시 2019.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