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죽방렴멸치 / 남상진

문근영 2019. 1. 19. 08:42

죽방렴멸치

 

남상진

 

 

때로는 구부러진 그의 등에다

시위를 걸고 싶을 때가 있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눈동자는 표적을 잃은 지 오래

골목은 출구도 없는 방안을 따라 이어졌다

누구처럼 막막한 놈들과 마주쳤을 때

한 번쯤 발사할 수 있는

먹물 한 줌 담아내지 못한 학벌

출구를 봉쇄당했을 때

무딘 주둥이를 얼마나 들이박았을까

붉게 물든 주둥이가 무색하게

몸뚱이는 이미 통발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

달빛과 등대가 높은 곳에서

밤마다 눈빛을 주고받을 때에도

현수막을 흔들고 스크럼으로 맞섰을 뿐

올곧았던 대나무가

통발의 앞잡이가 될 줄 몰랐다 

파도가 석화처럼 날을 세우고

통발에 웅크린 별들이

반짝 비늘로 스러지던 보름 밤

생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을까

정리해고 통지를 받은 김씨가

한 평 방 안에서
벽을 향해 누운 등에다 시위를 걸고 있다

 

-남상진 현관문은 블랙홀이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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