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이용헌
은가락지를 입에 문 검은 새가 천공으로 날아간다
얼마나 날고 날았을까
슬픔의 무게로 기울어진 오른쪽은 닳아 없어지고
고독의 순도로 담금질한 왼쪽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은가락지를 떨어뜨린 검은 새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영겁을 물고 왔다 영겁을 놓고 가는 우주의 틈서리에서
소리를 잃은 말들이 침묵으로 반짝인다
한순간 나를 잃고 몸 밖을 떠돌던 내가
언약도 없이 당신을 맞는다
당신의 가는 손마디가 동그랗게 비어 있다
—《시사사》2016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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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헌 / 광주 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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