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초식동물들
문성해
보리수나무 아래
잎과 열매가 흩어져 있네
엊저녁
초식동물처럼
보리수 열매를 입으로 훑던 사람들,
유순히 달빛을 받으며
어떤 이는 고라니처럼
어떤 이는 사슴처럼
두 발로 곧추서서
아주 흔한 그림이었지
길 가다
산딸기를 훑고
찔레 순을 분질러 먹고
버들치 후후 불며 시냇물 마시던
옛적에는
사슴과 고라니가 입댄 그것을
사람도 오물거리던 그때는
시큼 덜큰한 맛이 지천에 뻗쳐
사람 속에도
눈썹이 정한 짐승 한 마리쯤 들었었다지
우물 바닥에 첫물이 고이는 새벽이면
사람 속에도
순한 이슬이 고였다지
—《시와 표현》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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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 2003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자라』『아주 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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