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저녁의 초식동물들 / 문성해

문근영 2017. 12. 4. 23:19

저녁의 초식동물들

 

   문성해

 

 

 

보리수나무 아래

잎과 열매가 흩어져 있네

 

엊저녁

초식동물처럼

보리수 열매를 입으로 훑던 사람들,

 

유순히 달빛을 받으며

어떤 이는 고라니처럼

어떤 이는 사슴처럼

두 발로 곧추서서

 

아주 흔한 그림이었지

길 가다

산딸기를 훑고

찔레 순을 분질러 먹고

버들치 후후 불며 시냇물 마시던

옛적에는

 

사슴과 고라니가 입댄 그것을

사람도 오물거리던 그때는

시큼 덜큰한 맛이 지천에 뻗쳐

사람 속에도

눈썹이 정한 짐승 한 마리쯤 들었었다지

 

우물 바닥에 첫물이 고이는 새벽이면

사람 속에도

순한 이슬이 고였다지

 

 

 

                      —《시와 표현》2016년 8월호

_____________

문성해 /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 2003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자라』『아주 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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