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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얀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 박상순

문근영 2017. 12. 4. 23:21

하얀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박상순

 

 

 

하얀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한 묶음의 발가락들이 허공에서 떨어진다.

얇은 발가락, 외로운

발가락, 뻣뻣한 발가락,

 

내 마음이 하얀 달을, 또 한 입 베어 물면

컴컴한 발이 문을 열고 들어와

방안에 쌓인

내 발가락들 가운데 한 묶음을 가지고 간다.

부풀어 오르는 발가락,

멍든 발가락.

접시 위에 올려놓으면 킁킁, 소리를 내는 발가락.

 

하얀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허공에서 한 묶음의 발가락들이 떨어진다.

술 취한 발, 바다에서 나온 발,

돼지 냄새 나는 발, 흙 묻은 발,

바스락거리는 가을의 발,

복면을 쓴 12월의 발이 다가와

한 묶음씩 허공에서 떨어진 내 발가락들을

가지고 문밖으로 나간다.

 

 

                       —계간《시향》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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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순 / 1962년 서울 출생. 1991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Love Adagio』.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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