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박상순
하얀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한 묶음의 발가락들이 허공에서 떨어진다.
얇은 발가락, 외로운
발가락, 뻣뻣한 발가락,
내 마음이 하얀 달을, 또 한 입 베어 물면
컴컴한 발이 문을 열고 들어와
방안에 쌓인
내 발가락들 가운데 한 묶음을 가지고 간다.
부풀어 오르는 발가락,
멍든 발가락.
접시 위에 올려놓으면 킁킁, 소리를 내는 발가락.
하얀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허공에서 한 묶음의 발가락들이 떨어진다.
술 취한 발, 바다에서 나온 발,
돼지 냄새 나는 발, 흙 묻은 발,
바스락거리는 가을의 발,
복면을 쓴 12월의 발이 다가와
한 묶음씩 허공에서 떨어진 내 발가락들을
가지고 문밖으로 나간다.
—계간《시향》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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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순 / 1962년 서울 출생. 1991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Love Adagio』.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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