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이홍섭] 주인 / 멀미

문근영 2011. 12. 22. 19:10

 

주인

 

  이 홍 섭

 

 

아이가

힘겹게 뒤집기를 시작하면서

이 철없는 세상을 용서하기로 했다

 

마흔 넘어 찾아온 아이가

외로 자기 시작하면서

이 외로운 세상을 용서하기로 했다

 

바람에 뒤집히는 감잎 한 장

엉덩이를 치켜들고 전진하는 애벌레 한 마리도

여기 이 세상의 어여쁜 주인이시다

 

힘겹고, 외로워도

가야 하는 세상이 저기에 있다

 

 

 

 

 

 

멀미

 

 

어머니와 함께

아흔아홉 굽이 대관령 넘어 친척 집으로 가는 길

 

휘청거리는 버스 안에서

젊은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자꾸 말을 시키셨다

 

말 좀 해볼래

말 좀 해볼래

 

그러다보면

어느덧 버스는 대관령을 넘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잠이 드시곤 했다

 

일흔 넘으시며

어디 한 군데 몸 성한 곳 없는

늙으신 어머니

 

삶은 굽이굽이 멀미 같은 것이어서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인데

 

말 좀 해볼래

말 좀 해볼래

조르던 어머니께서는

이제 말이 없으시다

 

 

 

- 이홍섭 시집 『터미널』(문학동네, 2011. 7)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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