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송 진] 봄, 말버짐

문근영 2011. 12. 22. 19:13

봄, 말버짐

 

송 진

 

 

네가 기차표를 끊었다고 전화하는 순간

나는 지난 밤 젖꼭지까지 아픈 기침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고 로숀을 바른다

 

 

네가 플랫폼에 들어선 순간

나는 양변기에 앉아 민들레꽃처럼 노란 오줌을 누고

비데 버튼을 누른다

 

 

네가 기차에 올라 열차 카페에 들려 마일드 커피 두 잔을 위해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빨간 지갑을 열 때

 

나는 팬티 올리기 전 백 년 전 이야기까지 토할 것 같아

엉금엉금 병든 고슴도치처럼 기어 은행나무 굴속으로 들어간다

 

뱀을 토하고 햄스터를 토하고 버찌를 토하고 죽은 아기마저 토하고 난 뒤

굴 앞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네가 일반석 7호차 순방향 31호석에 앉아

창 밖에 내리는 겹벚꽃나무 연분홍 꽃눈을 보고 있을 때

 

나는 동백꽃 이불 위에 뚝뚝 떨어지는 모가지 여러 개를

불붙는 진달래 상자 속에 넣고 있는 것이다.

 

 

 

 

―『시인시각』(2011.  가을)

 ―『부울경 문학작품선집』(log on books, 201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비매飛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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