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라는 거
유종인
절벽 끝에서도 들풀은 달린다
끝까지
바람을 배웅하듯이
저만치, 바다는 파도의 갈기로 수컷이 되었다가
섬들을 낳은
수평선으로 암컷이 되었다가
그걸 바라보는 나는
파도 등쌀에 못 살겠다 헛말을 한다
파도의 등쌀, 그걸 가슴에 들여보니
사랑은
끊이지 않는
마음의 등쌀이려니 한다
그래도 남는 파도의 등쌀은
등글개첩처럼
등글개첩처럼
한편 겨운 마음 절벽이 가렵고도 가파른 등을 내주며
밤이, 새도록 데리고 논다
날 밝으면
절벽 가까이 가라말 하나 찾아와
파도에게 배운 헛말로
파도에게 투레질을 한다
나도 네발 달린
파도 한 마장이라며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문학과지성사, 201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전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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