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황규관]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다

문근영 2010. 6. 7. 10:44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다

 

  황 규 관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는다
네 식구가 열일곱평 낡은 아파트에서
뒹굴며 사는 일이 이렇다
내가 출근을 하러 나간 문으로
학교 끝난 딸아이가 들어오고
아내가 머리감고 나온 화장실로
아들놈이 바지춤을 부여 잡고 뛰어들어간다.
들어오고 나가고 먹고 싸는 일
그치지 않는 이 단순한 형식이 결코 가볍지 않아진 건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는
작은 집에 살고 나서부터다
해가 뜨고 지는 일이나
태어나서 죽는 일도 이와 닮았다는 생각이다 … (하략)



흔히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사는 풍경이다. 열일곱 평 낡은 아파트, 온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는 그림. 어디엔가 특수한 곳에 시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진한

삶의 경험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는 시라고나 할까? 그렇다. 시는 자기가 사는 곳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를 일상의 풍경 속에서 언어로 줍기 위해선 얼마나 깊이깊이 자기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것인가. 당신도 당신의 동네와 방을 이 아침 그려보지 않겠는가.

깊이깊이 들여다본 뒤에. <강은교·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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