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주(1976~ )
**중앙일보(2007. 3. 5<월> 31면'시(詩)가 있는 아침')게재
**김선우시인말씀:
팔과 손이 없다.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 한 점이 백 년 같다. 그래야 아이의 숨소리로 흘러나오는 바람의 화첩. 화첩의 주인은 태어난 적 없는 아가의 두 손. 가끔 담벼락 밑에 버려진 목숨이 울 때, 바람이 묻는다. 이봐, 우리는 자궁 안에 또 무엇을 두고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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