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이장욱] 손가락 진화

문근영 2010. 6. 3. 11:26

손가락 진화

 

이장욱

 

 

당신의 부드러운 손가락에 무슨 이유가 있나.

 

다섯 개로 펴지기 이전에는 무엇이었나.

 

그렇게 아름답고 사소할 수 있나.

 

가리키고 지울 수 있나.

 

스르르 흩어지는 순간에

 

무너지는 마음은 어떤 형태로 깃들이나.

 

그래서 새의 흉내를 낼 때가 있나.

 

무엇과 함께 추락할 수 있나.

 

가늘어지나.

 

땅을 긁었나.

 

애초에 그렇게 갈라져 있던 이유가

 

무섭게도 있지 않았나.

 

 

 - 『시로 여는 세상』 (2009. 여름)

 

 

▶이장욱 시인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외.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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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편다. 신이 주신 또 하나의 선물이다. 마치 내가 걸어가고 싶은 세상의 모든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듯, 다섯 개가 모두 각자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때로는 어떤 마음을 대신해 불끈 주먹을 쥐기도 하고, 누군가의 다친 마음을 위해 등을 쓸어주기도 한다. 마디마디가 있어 구부리면 손가락들이 나를 바라본다. 나를 찌른다. 나날이 다른 말을 한다. 손가락도 진화되어 간다. 손가락의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포클레인을 닮은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로그인 한다. 세상이 열린다. 그 속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오늘 이 아침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몇 번 더 두드리면 내일도 가져다 줄 것이다.

- 안효희·시인 /국제신문 [아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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