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최종천-
혀로 빛나게 핥아놓은 밥그릇에는
허기가 가득 차 있다
허기는 투명하지만 잘 보인다
뼈가 앙상한 것을 보면
이빨은 이제
밥그릇도 씹어먹을 수 있으리라
나는 개들이
씹던 목줄을 뺕어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내 손가락을 철망 안으로 넣어주었을 때
녀석은 절대로 물지 않았다
내가 밥을 준다는 투명한 의식이
녀석을 밥그릇 안에 가두어놓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두 끼나 세 끼를 주고 싶지만
나는 사장의 명령에 따라 한 끼만 주고 있다
나는 회사의 수위
개는 밤에 내가 할 일을 대신한다
사원들이 퇴근할 때, 개집 문을 열어놓아
불투명한 밤을 투명하게 밝혀놓아야
안심하고 잠잘 수가 있다
간밤에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일감들 사이에서 녀석이 잡아놓고
다 먹지 않은 의문 하나가 피를 흘리고 있다
내가 받는 임금은 아주 적다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
그러니까, 개밥 정도인 것이다
개의 그 깊은 낮잠 속에 고여 비치는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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