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창
더 일하게 해달라는 절규 자체가 비극이다
우리는 강둑을 달리던 웃음도 잃고
흰구름을 보면 맑아지던 영혼도 빼앗기고
그렇지, 가난했던 외등 아래의 설렘도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놔두고 떠나왔다
돌아갈 길은 아득히 지워졌는데
더 일하면 모든 게 되돌려질 것처럼 내내 믿어왔는데
이제는 밥만 먹게 해달라고* 울어야 한다
초침처럼 빠르게 계산을 하겠다고
화장실 변기를 반짝반짝 닦겠다고
외주 용역은 안된다,
찬 바닥에 드러누워야 한다
내 몸을 구석구석 착취해달라는 절규 자체가
너무 지독한 치욕인데
치욕에 대한 예의도 모르는 자들에게
무엇보다,
우리가 먹는 밥이 뜨거운 까닭이
자신들의 착취 때문임을 죽어도 알 수 없는 자들에게
더 일하게 해달라며 검게 타버린 영혼을
남김없이 보여줘야 하다니!
가지기 싫은 원한을
한 아름씩 나눠가져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무거운 비극이다
* "우리가 정규직이 돼서 한달에 150만원이나 200만원 받고 싶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한달에 80만원, 1년에 960만원 벌게 해달라는 거잖아요. 비정규직으로라도 계속 계약을 갱신하면서 일을 하게 해달라는 건데, 그게 이렇게까지 당해야 할 일인가요?" (어느 이랜드 노조원의 말, 프레시안 2007년 7월 20일자)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 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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