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강 / 황인숙

문근영 2008. 11. 8. 21:00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모진 소리 -황인숙

모진 소리를 들으면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더라도
내 귀를 겨냥한 소리가 아니더라도
모진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쩌엉한다.
온몸이 쿡쿡 아파온다
누군가의 온몸을
가슴속부터 쩡 금가게 했을
모진 소리

나와 헤어져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내 모진 소리를 자꾸 생각했을
내 모진 소리에 무수히 정 맞았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모진소리,
늑골에 정을 친다
쩌어엉 세상에 금이 간다.

-자고로 시인은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내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법.

  시인의 의무이자 자격 어쩌면 특권
  나에게는 좌절 또는 부러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깊은 졸음

 

황인숙

 

뒤로도 양옆으로도

벽을 훑어내리는 비바람 소리

방충망에 걸러져

방 안 깊숙이 들이치는 빗가루들

등덜미에 잔소름이로 맺힌다

산란한 빗소리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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