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남(언론인)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가 쓴 산문 가운데 미당(未堂) 서정주와 얽힌 사연이 나온다. 문학지의 주간으로 있던 조정래는 1985년 8월호에서 광복 40주년 기념특집으로 친일문인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친일문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진정한 반성이나 사죄를 한 바 없었으므로, 차제에 사죄를 하게 하자는 것이 그 특집의 큰 방향이었다. 생존해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도록 지면을 제공키로 한 것이다.
생존자 중에서 문학적 비중으로 보아 첫 번째로 꼽히는 사람이 서정주였다. 서정주는 대학시절 조정래의 선생님이었고, 그의 아내를 시인으로 등단시킨 스승이었으며, 그들 결혼식의 주례였다. 조정래는 아내와 상의 끝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서정주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선생님께서 글의 마지막에 잘못했다고 한 마디만 하시면 선생님은 자유로워지십니다.” 조정래가 조심조심 꺼낸 말이었다. “뭐라고! 넌 대학생 때부터 반골기질이 승하더니만…. 그래 들어봐라.” 안색이 변한 서정주는 두 시간이 넘도록 장광설을 폈다. 그러나 결국 서정주는 글쓰기를 거부했다. 서정주는 끝내 자신의 친일행각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죽음을 얼마 앞두고 어느 텔레비젼 방송국 기자가 마이크를 대며 물었다. 친일에 대해 말해 달라고. “거 뭐 잘들 봐달라고 해!” 초췌한 서정주의 대꾸였다. 조정래는 그 화면을 보면서 가슴이 쓰라렸다. 그의 선생님은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미당은 그야말로 미당인 채로 이 세상을 떠났다.
있었던 사실을 있었던 대로 밝히는 것이 왜 그렇게도 두려운가
사과하기가 그렇게도 힘들었던가. 아니면 친일이 그의 신념이었던가. 세상을 잘못 본 안목과 민족을 배신한 한 때의 잘못을 사과하면 될 일이었다. 그는 끝내 한 마디 사죄의 말을 후련히 뱉어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나는 조정래의 그 글을 보면서, 서정주가 시는 잘 쓰는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는 매우 못나고 용렬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1980년대 초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통령 선거 때 전두환 지지연설을 하는 서정주를 보면서, 나는 저 사람에게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의심했다.
조정래의 그 글에 의하면, 일본의 압제로 죽어간 우리 동포들의 숫자가 4백여만, 반도의 조선땅에 들어와 활개친 일본인 수가 8십여만, 거기에 기생했던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1백 6십여만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99%가 지식인이었다. “새와 짐승도 갯가에서 슬피 우는데 / 무궁화 나라는 이미 사라졌는가 /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 일 생각하니 / 글 아는 사람 구실 참으로 어렵도다” 라는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한 황매천과는 전혀 반대의 길을 갔던 지식인 1백 6십여만명 가운데 민족 앞에 진솔한 사죄의 말을 남긴 이가 있다는 얘기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이 친일행각을 벌이고 있을 때, 이육사(李陸史)는 열 차례도 넘게 투옥당한 끝에 세상을 떠났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려던 윤동주는 일본감옥에서 생체실험을 당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친일한 사람들은, 그 후손들은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사죄도 하지 않는데, 용서부터 하라고? 그들의 친일을 부득이한 일로 이해하자고? 역사가 개개인의 부득이한 사정을 다 들어준다면 이 세상에 정의란 없다. 친일보다 그의 공적이 크다고? 그건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그들에게 나는 제발 부끄러움을 알라고 말하고 싶다.
누가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을 반대하는가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친일인사 4천 3백 89명의 인적사항과 행적을 담은 인명사전을 발간한다고 한다. 그 발간이 임박해지자 여기저기서 발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뜨겁다. 동병상련인가. 자신들의 뒤가 구려서인가. 있었던 사실을 있었던 대로 밝히는 것이 왜 그렇게도 두려운가. 그들은 구한말 나라가 망할 때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을 썼던 장지연 같은 애국지사를 친일인사로 몰아서야 되겠느냐고 항변한다. 나도 장지연의 훼절을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또 애석해 마지 않는다. 나는 그가 관여했던 「경남일보」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인걸 어쩌랴. 조지훈도 지조론에서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하였으니 참 명언이다”하였다.
그들은 또 박정희를 비롯, 해방 후 이 나라를 이끌어왔던 인사들의 친일행위를 부각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박정희가 혈서로 “일본인으로써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을 얘기한 것은 묻어 은폐시킬 일이 아니라 밝히어 드러낼 일이다. 독립군 출신의 장준하는 만주군 장교출신 박정희에게 정신적으로 질 수 없다며 한겨울에도 냉수마찰을 했다. 감추어진 진실을 빛 속에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불의가 승리하고 기회주의가 판을 치는 역사를 청산하는 길이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놓고 볼 때, 이 나라에는 민족, 민주, 통일을 지향해 온 한 축과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을 지향하는 또 하나의 축이 엄존하고 있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친일세력은 당연히 반민주의 편에 섰던 사람과 궤적을 같이 한다. 30여년에 걸친 군사독재 아래서 기득권을 누리며 민주인사를 탄압했던 정치인, 관료, 검사·판사 등 법조인, 독재를 엄호하고 용비어천가를 썼던 언론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을 반대하고 나서고 있다. 나는 언젠가는 「반민주 인명사전」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거기 정의가 살아 숨쉬고 민족정기가 바로 선 당당한 대한민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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