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이적(一死 二謫), 한 사람은 죽고 두 사람은 귀양살이, 동포(同胞) 형제이던 정약전, 약종, 약용 3형제가 1801년 신유(辛酉)년 초봄에 당한 역사적 비극의 실체였습니다. 더구나 누나의 남편인 이승훈이 참수당해 그 집안도 망했고, 조카사위 황사영의 집안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해 파멸해버리고 말았던 다산 집안이었습니다.
약전. 약용 형제는 16년 18년의 귀양살이에 일사일생(一死一生), 약전은 귀양지에서 세상을 떠났고, 다산은 살아서 고향에 돌아와 또 18년의 여생을 아무런 탈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75세의 장수를 누린 다산의 의지는 얼마나 강했기에 절망의 처지에서도 좌절을 모르고 그렇게 탁월하게 학문적 대업과 인간적 승리를 성취해 낼 수 있었을까요.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왜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꺼릴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과거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게 고생하다보면 그 마음이 단련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이나 사물의 진심과 거짓을 올바르게 알 수 있는 장점을 갖는 것이다.” (두 아들에게. 1803. 1. 1)
아무리 어려운 처지이지만 절망에 빠져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아들들에 대한 다산의 충고는 바로 다산 자신의 의지이자 굳은 신념의 표현이었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잃고도 큰 학자로 성장한 율곡 이이와 옳은 주장을 펴다가 세상의 배척을 받고도 오히려 대학자로 우뚝 섰던 우담 정시한, 아버지의 귀양지에서 태어나 바로 아버지를 잃은 참담한 불행 속에서 학자들의 종장이 된 성호 이익의 예를 들면서, 너희가 왜 그렇게 될 수 없겠느냐고 다그치던 다산의 뜻은 바로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있노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습니다.
폐족에서도 걸출한 선비는 많이 나왔다고 전제하고, 재주있는 사람을 폐족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 집안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폐족의 자제는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학문의 진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어서 그런 인재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하여 무한한 가능성을 아들들에게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불행과 절망의 늪에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던 다산의 인생관, 오늘처럼 앞이 보이지 않고 암담하기만 한 세상, 다른 어디에서보다도 다산에게서 희망을 배워야 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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