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재 소(성균관대 명예교수)
가을도 이제 끝 무렵에 접어들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천지를 현란하게 물들이고 노란 은행잎이 아스팔트의 색깔을 바꿔놓고 있다. 그러나 도시인들의 삶은 이 찬란한 가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있다. 보라. 아침 출근시간의 시내버스 안 승객들은 반 이상이 졸고 있다. 이들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희망찬 아침이 아니라, 또다시 고된 일상이 기다리는 숨 막히는 아침이다. 먹고 살기 위한 힘겨운 고투가 시작되는 아침인 것이다.
“그대도 잠 못 이루겠지요?”
하지만 생활의 무게가 아무리 어깨를 짓눌러도 이승에서의 아름다운 삶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의 일과에서 조그마한 틈을 내어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옛사람들은 가을에 편지를 썼다. 중국 당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이 친구에게 보낸 시(詩)로 쓴 편지 한 수가 생각난다.
때마침 가을밤, 그대가 그리워서 懷君屬秋夜 서늘한 하늘아래 시 읊으며 거닌다오 散步詠
天 빈 산,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空山松子落 깊이 사는 그대 또한 잠 못 이루겠지요? 幽人應未眠
위응물이 친구인 구단(邱丹)에게 보낸 시인데, 친구는 그때 벼슬을 버리고 임평산(臨平山)에 은거하고 있었다. 어느 가을날 밤 위응물은 임평산에 은거하고 있는 친구가 몹시 그리워 잠을 못 이루고 이리 저리 거닌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 또한 이 가을밤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으며 잠 못 이루리라고 상상한다. ‘그도 응당 나를 그리워하고 있으리라.’ 이러한 그리움을 20자의 시로 써서 보낸 것이다. 아무런 수식도 기교도 없는 담박한 시이지만 두 사람의 우정이 짙게 배어있는 시이다. 그래서 이 시가 그토록 후인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도 누구나 한 사람 쯤은 그리운 대상이 있을 것이다. 이 가을엔 그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자. 헤어진 첫사랑의 연인도 좋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도 좋고 떨어져 살고 있는 형제자매도 좋다. 그러면 세속에 시달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벼루에 먹을 갈아서 붓으로 썼을 것이다. 먹을 가는 동안은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붓이 아닌들 어떠랴. 연필도 좋고 볼펜도 좋다. 그러나 컴퓨터 워드프로세스로 찍어서 보내진 말자. 컴퓨터로 작성한 글에는 기계의 냄새가 묻어있게 마련이다. 그리운 사람에겐 기계의 냄새가 아닌 사람의 냄새를 실어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가을엔 편지를 쓰자
위응물처럼 꼭 시로 쓸 필요도 없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좋다. 글씨가 서툴러도 좋다. 그리운 사람에게 그리운 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 하면 저절로 시(詩)가 되는 법이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팍팍한 일상사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상해보라. 공과금 납부 고지서나 백화점 판촉 광고물로 가득 차 있던 우편함에,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 편지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어떠할까.
해마다 찾아오고 해마다 떠나가는 가을. 그냥 왔다가 그냥 떠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이 너무나 쓸쓸하지 않은가. 올해도 또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가을이 너무나 아쉽지 않은가. 이 찬란한 가을엔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자. e-mail이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아닌, 육성(肉聲)이 배어있는 그리운 정을 육필(肉筆)에 실어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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