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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 김태희

문근영 2019. 1. 6.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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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김 태 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간밤에 잘 있었는가? 나는 요사이 놈들이 한 짓에 화가 나서 밤에 이 편지를 쓰느라 거의 오경(五更: 새벽 3~5시)이 지났다. 나의 성품도 별나다고 하겠으니 껄껄 웃을 일이다. 보고 난 뒤에는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떠한가? 이만 줄인다.”

정조(正祖)는 정무(政務)와 공부로 밤잠을 못 자기 일쑤인 일중독자였다. 노론 벽파의 지도자인 심환지에게 보낸, 이런 비밀편지가 4년간 무려 297통! 지난봄 신문을 통해 이것이 알려지자, 평소 정조를 존경하던 분은 마음이 상해 신문의 선정적 보도를 탓하기도 했다.

강고한 노론 벽파세력과 싸우다 돌연한 죽음으로 꿈을 완성하지 못한 개혁군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그 벽파의 수괴와 비밀편지라니? 실록에 기록된 일이 알고 보니 이미 비밀편지로 짜고 한 짓이라니, 은밀한 공작정치? 문체반정을 외쳤던 학자군주가 상스런 막말을?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정조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오로지 올바름만 추구한 호학의 개혁군주 또는 실학군주?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아닐까? 아직 정조와 정조시대의 정치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아무튼 이번 비밀어찰로 기록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이 확인되었다. 그동안 <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그리고 학자군주로서의 면모를 과시한 방대한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를 통해 정조와 그의 정치를 읽었다. 이제 비밀어찰을 더하여 기록의 행간을 읽고 기록을 꿰맞춰야 실상을 더 알게 될 것 같다.

그럼, 연암 박지원에게서는 무엇을 보는가? 그의 자유분방한 문체와 사상에 대해 당대에도 찬탄과 비판이 엇갈리더니 결국 금서로 취급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김택영이 그의 문장을 뛰어난 고문(古文)이라 평가해 처음으로 <연암집>을 엮어 간행했는데, 어떤 유림인사는 아직도 볼온시하여 반대했고, 연암을 사상계의 위인으로 본 신채호는 김택영의 <연암집>이 문자의 교묘한 것만 취한 것이라 하여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학운동’이 전개된 1930년대에, 어떤 이는 조선의 고전을 보았고, 어떤 이는 계급타파의 진보적 사회사상을 보았다.

어떤 이는 문장을 보고, 어떤 이는 사상을 본다. 어떤 이는 근대를 보고, 어떤 이는 탈근대를 본다. 시대에 따라 입장에 따라 사람마다 보는 게 다르다. 아무래도 저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아닐까? 아직 연암을 충분히 알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그럼, 실학에 대해서는 무엇을 보는가? 근대, 민족, 개혁 등이 교과서에 나온 실학의 요지라 기억하는데,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근대 콤플렉스? 철 지난 민족주의? 우리도 있었다는 식의 자기위안? 이미 권력화한 학문? 실학은 없다?

근대화 기획과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실학을 바라보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을 터. 그렇게 박제된 실학을 두고 논란을 벌일 일은 아니다. 공자의 이름을 받들면서 공자의 뜻을 어지럽힌다더니, 실학의 이름으로 허학이 자행된다면 껄껄 웃을 일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실학이라고 하는 것을 제대로 또 충분히 읽은 걸까?

옛것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고 안목이 넓어지면

며칠 전 11월 4일,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출간 30주년 축하모임이 출판사 창비의 주최로 있었다. 이 책은 다산이 유배지에서 사랑하는 아들과, 지기(知己)였던 형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은 것이다. 유배지에서 학문과 저술을 함께한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도 들어있다. 그만큼 가까이에서 다산의 진정을 엿보게 한다. 스테디셀러가 된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행사에 예상보다 많은 분이 참석했다. 역자인 박석무 이사장의 지인(知人)이어서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시절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다 내몰렸던 사람들에게 어디든 유배지 아닌 곳이 없었다. 시대의 아픔으로 다산의 삶에 감동하고 의기가 통했을 것이다. 참석한 분들의 면면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다.

실학은 여러 점에서 오늘과 통하는 현재성을 갖는다. 가령 외부에서 권위를 끌어와 권력화하고 교조성과 폐쇄성으로 담을 쌓는 악습이 지금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한 실학은 유효하다. 세계를 보는 관점이 화이론(華夷論)적 구조 내지 택일적 이분법의 틀에 갇혀있는 한 실학은 유효하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한 실학은 유효하다.

지난 9월 22일 수원화성박물관 개관을 기념하는 ‘정조어찰’ 학술대회(주관: 조선시대사학회)가, 이어 10월 28일 정조대왕 탄신 256돌을 기념하는 ‘정조학 국제학술회의’(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가 수원에서 열렸다. 모두 수원시와 그 산하단체(수원화성운영재단 등)가 주최하고 지원한 점이 주목된다.

또 남양주 다산유적지에 실학박물관을 개관한 기념으로, 지난달 30일과 31일 이틀간 ‘제10회 동아시아실학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실학박물관(관장: 안병직)과 한국실학학회(회장: 임형택)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중국과 일본의 학자를 포함하여 23명의 발표자와 22명의 토론자 등 많은 연구자들이 참석했다. 번역자도 12명이 동원되었다.

의미 있는 행사들이다. 우리의 풍부한 옛것[Reference]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고 안목이 넓어지면, 오늘의 문제에 대해서도 통찰력이 생기고 창의적 상상력이 발동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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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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