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참채, 관행화된 불법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조선시대를 공부하다 보면 희한한 현상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예컨대 당참채(堂參債)라는 것도 그런 것 중 하나다. 지방 수령이 발령을 받아 처음 부임하거나 임지를 옮길 때 자신의 인사 서류를 만드는 데 관계한 이조 혹은 병조의 서리에게 주는 돈을 말한다. 이조와 병조가 인사를 관장하는 관청이기 때문이다. 인사치레로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이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예컨대 공무원으로 재직하는 사람이 자신의 승진에 관계한 사람에게 돈을 건넨다면 옳은 일이겠는가.
인사부처 서리에게 돈 바치고, 백성 쥐어짜 본전에 웃돈까지
더욱이 당참채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고 한다. 이조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1857년에 작성된 『이조서리당참절목(吏曹書吏堂參節目)』이란 문서를 통해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문서에 의하면 전국의 현(縣)에서 감영(監營)에 이르는 397곳의 지방 수령직에 당참채로 일정한 금액을 부과하고 있는데, 쌀과 현물을 제외하고도 그 총계는 2만 4천 냥에 달한다. 원래 불법이었던 것이 19세기 중반에 와서 세금처럼 징수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방에 부임하는 수령은 반드시 당참채를 내어야 했고, 내지 않으면 이조·병조의 서리는 그것을 징수하러 지방 수령을 찾아갔다.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이란 책을 보면 이조의 어떤 서리가 지방에 가서 당참채를 받아 오는 길에 전염병으로 딸 하나만 남기고 모두 죽은 일가족의 장례를 대신 치러 준 이야기를 싣고 미담으로 전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미담에 주목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당참채다. 당참채를 내지 않고 부임할 경우, 이조에서 해당 지방까지 직접 찾아가 당참채를 받기까지 했으니, 당참채는 외방 관직에 부임할 경우 반드시 내어야 할 돈이었던 것이다.
꼭 이조, 병조의 서리에게만 돈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이 외에도 인사할 곳이 많았다. 1832년(혹은 1772년으로 추정됨)에 영덕현령(盈德縣令)으로 부임한 사람이 인사차 낸 돈을 보자. 그는 중앙 29곳의 관서에 돈을 내었던 바, 이조의 대령서리(待令書吏), 승정원의 기별서리(寄別書吏), 액정서(掖庭署)의 왕대비전 사알(司謁)·사약(司?)·별감(別監), 대전(大殿)의 사알·별감 등에게 돈을 보내고 받은 영수증의 일부가 남아 전하는데, 총액은 401냥, 포목으로 환산하면 2백 필에 이른다. 조선시대 지방 수령직은 약 4백 곳에 가깝다. 4백여 곳에 부임하는 사람이 돈을 바치고, 또 지방 수령직의 인사가 잦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조와 승정원, 액정서의 하례(下隷)들에게는 막대한 돈이 쏟아져 들어갔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서리 자리는 돈으로 매매되었다. 19세기 중반 호조 서리 자리는 약 2천 냥에 매매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돈을 갖다 바친 지방 수령은 당연히 백성을 쥐어짜서 본전은 물론 웃돈까지 챙겼던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조선후기가 되면 국가 권력이 소수 벌열의 손아귀에 떨어진다. 당연히 국가는 마치 사조직처럼 운영되고, 위에서 언급한 관청의 하례와 서리들은 거개 벌열가문 청지기들의 전유물이 된다. 생각해 보시라. 공무원이 소수 벌열가의 청지기라니!
국가는 사조직처럼 운영되고, 불법은 관행화되고
인사와 관련되어 하례들이 돈을 받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소수 양반세력의 소유물이 되자 불법은 관행이 되었고, 관행은 이내 합법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자 아무도 그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조선은 이렇게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어 세월을 끌다가 망하고 말았다.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후보자들은 불법과 탈법을 숱하게 저지르고 있다. 한두 건이 아니다. 아마도 집권당을 바뀌어 다른 그룹에서 후보자를 뽑아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신, 이 사회의 높고 거룩하신 분들에게 불법과 탈법이 다반사가 되어 있으니, 아마도 그분들 사이에서는 그런 불법과 탈법쯤이야 양심에 거리낄 것이 조금도 없는, 관행이 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말하는 실학자들의 개혁책은 이런 관행을 바로 잡고자 한 것이다. 다산의 『목민심서』가 그 결정판이다. 한데 오늘날 『목민심서』보다 더 좋은 방책이 있으니, 곧 선거다. 혁명이 아니라면, 국민들이 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선거뿐이다. 어디 지켜 볼 일이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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