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민 환(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지난 달 27일 치른 독일 총선에서 중도우파인 기민당(CDU)과 기사당(CSU) 연합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한 가운데 우파 자민당(FDP)이 약진해 독일에서 세 정파가 안정적인 우파 보수연정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우파득세는 유럽에서 하나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EU 27개국 가운데 아직도 공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키프로스를 비롯해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4개국에서만 좌파가 단독으로 집권하고 있고, 12개국에서 좌우파가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데 반해, 독일까지 포함해 이제 11개국이 우파 단독으로 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우리 메이저 신문은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 호가 승리하자 메르켈의 승리를 독일 우파의 승리로 한정하지 않고 마치 세계대세가 우향우하고 있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유럽에서 우향우 물결이 거센 것이 사실이어서 보수 언론의 보도태도를 크게 나무랄 것까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럽의 추세에 대해 과장하거나 간과하고 있는 두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좌우, 교대집권의 전통과 공약의 상호수렴 현상 유럽의 우향우 추세는 21세기 초에 유럽을 휩쓴 좌향좌 추세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이 짙다. 바로 이 점을 우리 메이저언론은 묵살하고 우파득세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상만을 과장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자 유럽은 좌파 집권이 대세를 이루었다. 유럽 유권자들이 새 천년의 꿈을 펼쳐갈 세력은 좌파뿐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 착각까지 느끼게 했다. 그런 좌편향의 진자운동(振子運動)의 반작용으로 요즘 우파 득세가 하나의 추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파득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좌우파가 교대해가며 집권하는 전통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향우 했다가 다시 좌향좌 하고, 좌향좌 했다가 다시 우향우 하는 것이 선진국 정치의 묘미다. 그런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유권자들은 그런 이치를 알고 집권세력을 바꾸곤 한다. 요즘 유럽의 우편향은 그런 부단한 시계추운동의 한 국면일 따름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최근에 좌파가 집권했다. 물론 미국에서는 좌우파의 정권교체가 전통이 된 지 오래지만 일본은 정당정치를 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일본에서 민주당이 집권해 정치를 얼마나 잘 할 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지만 정권교체의 제도화가 일본의 민주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쪽만 크게 보이는 건 정파성 때문 우리 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다른 요소 하나는 유럽 우파의 공약 가운데 우리나라 우파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만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공약을 당당하게 내걸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분명한 제동이 그 예다. 기업을 살리되 신자유주의의 맹목적인 시장제일주의를 경계하는 정책을 내세운 것도 이채롭다. 메르켈은 좌파가 전유물인 것처럼 내세우는 공약을 대폭 수렴함으로써 좌파의 표를 빼앗아 오는 데 성공했다. 선거 초반에는 자파의 상징적인 정책을 강조하다가 선거 막바지에는 다른 정파의 표심을 공략하는 선거 전략을 메르켈 역시 예외 없이 구사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선진국은 선거를 대결이나 갈등이 아니라 사회통합으로 이끌어간다.
우리 메이저 신문이 유럽의 득세를 세계적 추세인 것처럼 과장하고 유럽 우파의 공약에서 두드러진 진보적 성격을 간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하나의 체질로 굳어진 정파성 때문이다. 뼛속까지 스며든 정파성으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사물의 한 측면만이 크게 보이는 것이다. 기자는 사실(fact)을 사실 그대로 차분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 사실에 주관을 덧붙이는 일을 논설위원에게 넘길 때 우리 신문은 훌쩍 그 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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