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남(언론인)
이 나라에선 언제부터인지 ‘걷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내 주변에도 ‘걷는’ 사람이 생겼고, 어디를 가나 걷는 얘기를 한 두 자리 듣게 마련이다. 제주도에서는 올레길이 이어지고, 천왕봉을 보며 걷는 지리산 둘레길도 이제는 얼추 그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충청북도에서는 도경계를 따라 걸어서 일주하는 도로를 만들고, 동해안에서는 고성에서 울진까지 바다를 보며 걷는 길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산업화시대에 찻길을 만들어나가듯이, 지금은 ‘걷는 길’을 만드는 역사가 지방마다 한창이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걷자. 걷고 또 걷자.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제목의 책이 있듯이 걷는 것은 분명 사람의 건강에 좋다.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하여, 또 어떤 사람은 관광의 방법으로 걷기를 즐기고 있다. 이는 분명 좋은 일이다. 이러한 걷기운동이 일반화되기까지에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 순례길인 이 길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도 걷는 길을 만들자는 운동이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아직은 남아있는 우리의 옛길인 조령관문 길이나 문경 관음리에서 충주 미륵사지까지 이어지는 하늘재길을 걸어보자는 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걷는 일’ 하나까지도 서양을 따라서 해야 하나, 조금은 서글픈 감회를 지울 수 없다.
나는 걷고 싶다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이 글은 신영복(申榮福)이 수형생활 중이던 1988년 1월 30일, 그의 제수씨에게 쓴 편지의 일절이다. 그의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가운데 가장 아프게 내 가슴을 쳤던 구절이 이것이었다. 수인(囚人)은 늘 벽을 만난다. 그들은 꿈속에서마저 그 벽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에게 있어 걷는다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거룩한 가치, 너무도 간절한 소망으로서의 자유 바로 그 것이다.
인간은 갓난 아기일때는 수평으로 누워 있다가 기는 과정을 거쳐 ‘따로따로’ 혼자 서고, 마침내는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이다. 서고 걷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직립(直立)의 인간이 된다. 그런 점에서 선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탄생과 독립을, 그리고 걷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장엄한 출발을 의미한다.
박노해는 ‘걷는 이유’를 “나는 이대로 무너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내 하나뿐인 육신과 정신마저 / 이대로 망가지게 내버려둘 순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인간에게 있어 걷는다는 것은 확실히 단순한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는 걷는다」는 책을 쓴 베르나르 모리비에르는 “어떤 종교든 신도들이 순례에 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홀로 걸으며 생각을 하는 동안 근본적인 것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고대의 동서교역로였던 실크로드를 따라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西安)까지 1만2천km를 횡단하고 나서, 청소년재활재단을 설립했는데 범죄청소년을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최소한 2천5백km 이상을 걸어서 여행하게 한다고 한다. 소년원에 보내서 교화를 받게 하는 것보다 걷는 것이 반성에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걷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걷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이요, 곧 철학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루소는 “산보를 즐기는 동안에는 그 날 중 가장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는 자아 속으로 되돌아가 ‘나’만을 위하여 즐길 수 있고, 빈틈없이 인간의 진실과 자연이 소망하는 그대로의 존재로 되어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고독한 산보자의 꿈)이라고 하였다.
오늘 걸으며 생각한 것은 나는 농사짓는 날을 빼고는 어김없이 동네 산으로 새벽 산책을 간다. 나는 산속을 걷는다는 기분으로 등산을 한다. 그것은 먼 산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때 많은 생각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런저런 궁리도 이때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생각한다. 어제 오늘은 노무현의 죽음을 생각했다. “하늘은 결코 인간이 이겨내지 못할 시련을 주지 않는다”는데, 노무현이야말로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오늘도 나는 걸으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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