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포로 안추원
김 문 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경기도 풍덕 사람인 안추원(安秋元)은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전쟁 포로가 되었다. 13세의 소년이었던 안추원은 강화도로 피신했다가 몽고군에게 붙잡혔고, 심양으로 끌려가 한족 출신 대장장이에게 팔리는 몸이 되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662년에 안추원은 북경을 탈출했다가 산해관 문을 지키는 장수에게 붙잡혀 북경으로 압송되었고, 얼굴에 죄수의 표식을 새기는 형벌을 받았다.
병자호란 때 잡혀갔던 사람이 탈출해 고국에 돌아왔는데
2년 후인 1664년에 안추원은 재탈출을 감행하여 고국으로 돌아왔다. 의주부윤을 만난 안추원은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름과 이전에 살았던 곳을 분명하게 기억했고, 평안관찰사의 보고를 받은 현종은 그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제공하고 옛 고향으로 돌아가 살 수 있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안추원은 고향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의 부모와 형제들이 이미 사망한 데다 고향 땅에서 살아갈 방안도 막연했기 때문이다. 1666년 1월에 안추원은 조선을 떠나 청나라로 되돌아갔는데, 봉황성의 수장(守將)에게 붙잡히게 되면서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외교적 분쟁이 발생했다.
1660년대만 하더라도 청나라의 내정은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청은 1644년에 북경에 입성하여 중원을 차지했지만 남방 지역까지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은 조선이 명나라 유민과 합세하여 양쪽에서 동시에 협공할 경우를 가장 우려했는데, 안추원 사건은 청에 저항적인 조선을 길들이기에 매우 유용한 사안이었다.
1666년 6월에 청나라 사신이 안추원을 대동하고 조선에 도착했다. 제독 이일선(李一善)을 대표로 하는 청 사신이 추궁한 사안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청나라에서 수출을 금지시킨 유황을 구입해 온 조선인을 심문하는 것인데 죄를 범한 사람은 최선일이었다. 최선일의 심문에는 현종도 참여했는데, 금령을 지키지 않은 최선일은 사형이 확정되고 유황을 단속하지 못한 영장(領將)은 100대의 곤장을 맞고 3천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되었다.
두 번째는 안추원이 도망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청나라에 통보하지 않은 것에 대한 추궁이었다. 1637년 조선과 청이 맺은 협정에는 조선인 포로가 도망해 오면 청으로 돌려보낸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안추원 사건은 이를 위반한 것이다. 게다가 이 사건은 현종의 처분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국왕의 처지가 곤란하다는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었다. 청은 대신들이 국왕에게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아 사건이 발생했으므로 해당자를 모두 처벌하자는 입장이었다. 이에 현종은 사건의 책임을 국왕에게 돌림으로써 대신들의 처벌만은 막겠다는 입장이었다.
청나라의 협정 위반 추궁에 국왕은 굴욕을 감수해야 했고
안추원 사건의 처리를 놓고 양국 사이에 치열한 논리 싸움이 전개되었다. 청 사신은 조선 정부의 보고 계통을 따져가며 관련자의 신원과 책임을 확인했고, 죄가 있는 대신들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을러댔다. 이에 대해 현종은 책임을 혼자 떠맡았고, 대신들은 국왕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책임을 질책하고 나섰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현종은 청 황제가 있는 북쪽을 향해 꿇어앉으며 ‘황제에게 자신의 죄를 청한다’고 했고, ‘하늘 아래가 모두 황제의 땅인데 중국의 백성이 도망쳐 중국의 땅에 숨었다고 이를 보고하지 않으면 사형죄에 해당하느냐’고 따졌다.
이 사건은 결국 책임 있는 대신들을 유배시키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되기까지 국왕은 엄청난 굴욕을 감수해야 했고 청 사신들에게는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부었다. 가장 큰 피해는 조선을 길들이려는 청의 의도가 성공한 것이었다.
1667년 10월에 대만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명나라 유민 정경(鄭經)의 휘하에 있던 95명의 중국인이 조선에 표류했다. 조선 정부는 이들을 심문하면서 명의 유민임을 확인했지만, 일본이나 본토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95명 전원을 북경으로 압송했다. 불과 1년 전 안추원 사건으로 크게 홍역을 치렀던 조선 정부는 달리 마땅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글쓴이 / 김문식
·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 저서 : 『조선후기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