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오바마는 ‘환경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겨울이 되면 한강이 일찍 얼어버리는 일이 예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강이 얼다’가 뉴스가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요즈음은 특히 더 그렇다. 한겨울인 1월 중순쯤이 지나서야 밤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져서 한강물이 얼음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4,50년 전에는 영하 15도는 되어야 강추위라고 했는데 요새는 영하 5도의 날씨에도 그런 말을 쓴다. 지구가 그만큼 더워졌다는 뜻이다. …… 오바마의 핵심적 정책 산실로 알려진 미국진보센터(CAP)와 새로운 민주주의 프로젝트(NDP)는 오바마 행정부를 위한 정책 제안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주요한 내용은 (1) 기후변화 문제를 다룰 대통령 직속 국가에너지회의 신설 (2)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 수익으로 재생에너지 개발 (3) 단열주택 건설로 가정 전력 소비 10% 감축 (4) 10년간 12만5천 메가와트 풍력발전으로 40만 명 고용 창출 등이다. ……
4.8. 기독교 보수파라는 철옹성과 오바마
우리나라에서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만나는 ‘전도사들’이 있다. 전동차의 맨 앞칸부터 뒤칸까지 차례로 걸어가면서 “예수를 믿으세요, 그러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라고 외치거나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하는 이들 말이다. 나는 그들이 기독교의 어떤 종파에 속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본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나는 어떤 교회에서 나온 누구인데 내 말을 듣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말하지 않고 전철 승객들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 2004년 대선은 부시의 연임을 위해 다시 총동원 태세에 들어간 보수세력과 존 케리를 후보로 내세운 민주당 지지자들의 대결이었다. 2003년 3월 20일에 이라크를 침공하기 시작해서 확전 일로로 걸어간 부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렸으나 이번에도 기독교 보수파의 열성적인 지지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했다. CNN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매주 교회에 가는 개신교 신자’의 68%가 부시에게 투표한 반면 31%가 존 케리에게 표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2008년 대선을 ‘잃어버린 8년’을 되찾을 결정적인 계기로 보고, 비틀거리는 부시와 공화당을 겨냥해서 총력전을 시작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나간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명분도 없이 목숨을 잃고 경제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2008년 가을이라는 절호의 기회에 보수파가 이미 두 차례나 성공한 ‘선거전략’에 맞설 방책을 찾지 못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었다.
오바마, 기독교에 진중하면서도 온건한 자세로 접근
예비선거 초기의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 클리턴을 여유있게 앞서면서 민주당 후보가 된 버락 오바마는 기독교 유권자들에 아주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는 일찍이 연방 상원의원 시절에 미국의 기독교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미국인이 종교적인 국민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중 95%가 신을 믿고 3분의 2 이상이 교회에 다니며 37%는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하고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보다 창조론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가 예배 장소에 국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종말론을 내세우는 책이 나오면 수백만 권씩 팔리는가 하면, 기독교 음악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내리며, 모든 대도시 교외 지역에는 매일같이 대형 교회(megachurch)가 새로 출현해 탁아 시설부터 싱글 친목 회와 요가, 필라테스 강습에 이르기까지 온갖 서비스를 제공한다. (<담대한 희망>, 285~6쪽)
이렇게 ‘신을 믿는 미국인 95%’를 절대적 존재로 의식하고 예비선거 유세를 해야 했던 오바마에게 폭탄이 터졌다. 그가 ‘신앙의 사부’로 섬겨온 제레미아 라이트(Jeremiah Wright) 목사의 ‘빌어먹을 미국’(God damn America) 발언이 바로 그것이었다. 라이트는 시카고에서 8,500여 명의 신자가 다니는 대형 교회인 트리니티 연합그리스도 교회의 목사였다가 명예목사로 물러나 있었는데 오바마와 힐러리를 ‘정밀 검증’하던 ABC 뉴스가 라이트의 설교들을 뒤지다가 그 과격한 욕설을 집어 낸 것이다. 라이트는 오바마를 위해 변명을 하다가 또 실수를 저질렀다. 자칫하면 예비선거 과정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르게 된 오바마는 라이트의 언행에 ‘격분하고’ ‘비통한 심경’이라고 공개 발언을 한 뒤 그 교회를 탈퇴했다.
그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뒤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오바마는 2008년 8월 16일 캘리포니아주의 한 도시에서 열린 ‘신앙 포럼’에 공화당의 존 매케인과 함께 불려나갔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원죄를 위해 죽으셨고, 나는 그를 통해 속죄를 받았습니다.”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나 근본주의자들이 늘 하는 말을 따라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바마와 매케인은 그날 CNN을 통해 생중계된 포럼에서 낙태(임시중절)를 비롯한 민감한 사회적 쟁점들에 관해 뚜렷한 견해 차이를 보였다. 기독교 보수파의 핵심적 논제인 낙태와 관련해서 매케인은 임신 초기의 중절부터 반대한다고 말했으나 오바마는 그의 지론인 ‘필요한 경우의 낙태’에 찬성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두 후보의 공통점은 결혼을 두 남녀의 결합으로 규정하면서 동성결혼에 반대한 것이었다. 오바마는 포럼을 보수주의적 고백으로 시작했으나 정작 토론에서는 진보적 견해와 중도적 의견을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그 모임을 주관한 보수파의 릭 워런 목사한테서 “오바마와 매케인 두 후보가 미국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 왔으며, 모두 애국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선거라는 중차대한 정치적 결전장에서 오바마가 기독교에 진중하면서도 온건한 자세로 접근한 것이 매케인 진영이 매달린 네거티브 공세를 이겨내고 압승하도록 한 동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 개신교 표 45%, 천주교 표 54% 얻어 성공
2008년 11월 대선 결과를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바마가 흑인 표의 95%를 차지한 것은 그렇다 치고, 여성 표의 56%를 가져간 것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데 두드러진 현상은 레이건과 부시 부자가 공화당 후보로 나서서 당선된 1980, 1984, 1988, 2000, 2004년에 민주당 후보들이 차지했던 기독교 신자들의 표에 비해 오바마의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는 개신교의 표 45%(매케인은 54%), 천주교의 표 54%를 받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태교 표에서 오바마가 78 대 21로 매케인을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지표들로 판단하면 미국 기독교 보수파의 정치적 철옹성은 2008년 대선에서 일단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진취적 성향이 강한 오바마가 재임 중 기독교 보수파의 반격을 계속 막아 낼 수 있을지는 그와 민주당이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