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영민] 앵두 앵두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 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 뉴스가 된 詩 2012.05.01
[스크랩] [김남조] 나무들 5 나무들 5 김남조 무게를 견디는 자여 나무여 새둥지처럼 불거져 나온 열매들을 추스르며 추스르며 밤에도 잠자지 않네 실하게 부푸는 과육 가지가 휘청이는 과실들을 들어 올려라 들어 올려라 중천의 햇덩어리 너의 열매 무게가 기쁨인 자여 나무여 늘어나는 피와 살 늘수록 강건한 탄력.. 뉴스가 된 詩 2012.04.18
[스크랩] [원무현] 꽃샘추위가 나타나셨다 꽃샘추위가 나타나셨다 원무현 올해 들어 유난히도 화색이 도는 이모부가 이발소에 앉아 미소를 머금은 채 졸고 있습니다 염색도 하고 포마드도 발라서 햇살이 내려앉은 듯 반짝이는 머리를 꾸벅입니다 그러다가 무엇에 놀란 듯 화들짝 깼는데요 바로 그때 커트보자락 끝에서 윤기 짜르.. 뉴스가 된 詩 2012.04.02
[스크랩] [송재학] 환승 환승 송재학 고물이 통통한 배가 꼭 제 덩치만 한 배에 접근했다 배꼽 근처에서 낭랑한 입이 열리고 물컹한 다리가 걸쳐지자 통통의 승객들이 덩치로 옮겨 탄다 환승이다 하지만 내 시선에 붙잡힌 것은 눈꼬리가 샐쭉한 주선강舟船綱의 포유류이다 엉덩이가 더 큰 엉덩이에 들이대는 다.. 뉴스가 된 詩 2012.03.28
[스크랩] [김태형] 당신 생각 당신 생각 김태형 필경에는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가 있다 무거운 안개구름이 밀려들어 귀밑머리에 젖어도 한번은 꼭 해야만 되는 얘기가 있다 잠든 나귀 곁에 앉아서 나귀의 귀를 닮은 나뭇잎으로 밤바람을 깨워서라도 그래서라도 꼭은 하고 싶은 그런 얘기가 있다 ― 시집『코끼리 .. 뉴스가 된 詩 2012.03.24
[스크랩] [권혁웅] 수면 수면 권혁웅 작은 돌 하나로 잠든 그의 수심을 짐작해보려 한 적이 있다 그는 주름치마처럼 구겨졌으나 금세 제 표정을 다림질했다 팔매질 한 번에 수십 번 나이테가 그려졌으니 그에게도 여러 세상이 지나갔던 거다 ―시집『마징가 계보학』 (창비, 2005) ▶권혁웅=1967년 충북 청주 출생. 1.. 뉴스가 된 詩 2012.02.28
[스크랩] [오규원] 발자국과 깊이 발자국과 깊이 오 규 원(1941 ~ 2007) 어제는 펑펑 흰 눈이 내려 눈부셨고 오늘은 여전히 하얗게 쌓여 있어 눈부시다 뜰에서는 박새 한 마리가 자기가 찍은 발자국의 깊이를 보고 있다 깊이를 보고 있는 박새가 깊이보다 먼저 눈부시다 기다렸다는 듯이 저만치 앞서 가던 박새 한 마리.. 뉴스가 된 詩 2012.02.16
[스크랩] [김충규] 바닥의 힘 바닥의 힘 김충규 갓 태어나 바닥에서 자란 사람, 갓 죽을 때 바닥에 눕는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어냐, 한 문장으로 줄이면 바닥에서 시작하여 바닥으로 끝나는 것이다 바닥을 딛고 일어난 힘으로 걸었고 뛰었고 지 치면 쉬었고 하고 싶으면 바닥에서 정사를 나눴고 병들면 바닥에 .. 뉴스가 된 詩 2012.02.12
[스크랩] [정현종] 다른 나라 사람 다른 나라 사람 정 현 종 우리나라에서 다른 나라 사람 보는 건 얼마나 신선한지요 검거나 희거나 흑백 반반이거나 다른 피부색 다른 생김새를 보는 건 얼마나 신선한지요 다른 눈동자, 다른 머리색 이국의 말소리 몸집과 표정과 걸음걸이 내 마음을 물들이는 나그네의 공기, 그 .. 뉴스가 된 詩 2012.02.08
[스크랩] [배한봉] 전지(剪枝) 전지(剪枝) 배한봉 복숭아나무 가지마다 꽃눈이 싱싱합니다. 복숭아나무는, 그악스런 눈바람 견디느라 좀 늙었지만 아직 힘이 팔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나는 얽히고설킨 가지를 자릅니다. 지치고 아픈 과거시간을, 잘 보이지 않는 내 삶의 곁가지를 환한 봄볕에 잘라 말.. 뉴스가 된 詩 2012.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