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나타나셨다
원무현
올해 들어 유난히도 화색이 도는 이모부가
이발소에 앉아 미소를 머금은 채 졸고 있습니다
염색도 하고 포마드도 발라서
햇살이 내려앉은 듯 반짝이는 머리를 꾸벅입니다
그러다가 무엇에 놀란 듯 화들짝 깼는데요
바로 그때
커트보자락 끝에서 윤기 짜르르 흐르는 백구두가
쑥 나왔다 황급히 들어갑니다
아무도 몰래 누굴 만나러 갈 모양입니다만
우리 이모부 쉰도 훌쩍 넘긴 나이에
소 팔아서 바람을 샀던 일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어서
봄기운 살아나고 꽃 소식 들리면
그 전과를 들춰내서는
밤낮 없이 쌍심지 켜고 문단속하던 여자
이모를 꿈속에서 마주친 게 틀림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창 너머 저 목련나무는 뭐 땜에
열었던 꽃봉오리 도로 닫고 난리래요
▶원무현=격월간 '시사사'로 작품 활동. 시집으로 『홍어』 등이 있다.
〈시작노트〉 꽃샘 추위가 여간 매서운 게 아니군요. 남편의 못 말리는 방랑 끼와 바람 끼 때문에 늘 마음이 편치 못했지만 듣고도 못들은 척 보고도 못본 척 살아야 했던 우리 이모. 그렇게 여자의 한 시절을 마음 조이게 했던 우리 이모부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아니면 몸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백구두 닦는 일을 그만 두시더군요. 꽃샘 추위가 찾아오면, 코에 반질반질 광을 내서 목련처럼 눈부시던 이모부의 백구두와 그걸 시샘하던 우리 이모 쌍심지 켠 눈이 선합니다.
-[국제신문] 국제시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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