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송재학
고물이 통통한 배가 꼭 제 덩치만 한 배에 접근했다 배꼽 근처에서 낭랑한 입이 열리고 물컹한 다리가 걸쳐지자 통통의 승객들이 덩치로 옮겨 탄다 환승이다 하지만 내 시선에 붙잡힌 것은 눈꼬리가 샐쭉한 주선강舟船綱의 포유류이다 엉덩이가 더 큰 엉덩이에 들이대는 다정다감, 저들의 짝짓기에서도 쇠 냄새는 없다 입에서 입으로 건너가는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혀 같은 환승이 끝나고 엉덩이를 돌려 헤어질 때까지 이 뚱뚱하고 오래된 짐승들은 멈칫멈칫 젖은 살을 부빈다 물 위의 그림자들 포개지며 일렁거리며 마지막까지 머뭇거린다
―시집『내간체를 얻다』(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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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양과 “덩치”씨가 만나서 부비부비 연애질을 하더니, 기어이 짝짓기를 하네. 아이고, 쑥스럽고 민망해라. 예쁘기도 해라. 계문강목과속종(系門綱目科屬種)은 생물을 분류하고 상세화하는 분류체계다. 모든 생물이 분류표 안에 자리를 잡고 산다. 이를테면 인간은 ‘동물계 척추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유인원과 호모속 사람’에 속한다.
그런데 저 다정다감한 시인 덕분에 이제는 사물들도 한자리 초대를 받았다. 아마도 저 배들은 ‘사물계(事物系) 용골사물문(龍骨事物門) 주선강(舟船綱) 수상목(水上目) 부유과(浮游科) 머린속(marine屬) 배’ 정도 되리라. 이런 시를 읽으면 수사법이라는 게 끝내 사랑의 방법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권혁웅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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